홍파리가 학교에서 살아가는 법 (3)첫눈 내린 날
홍파리가 학교에서 살아가는 법 (3)첫눈 내린 날
  • 홍은영 전주 인후초 교사
  • 승인 2023.12.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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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면서 몇 년전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겨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1월에 첫눈이 내렸어요. 원래 첫눈은 아주 살짝 온 느낌만 나는데 이번 눈은 한겨울처럼 펑펑 함박눈이 쏟아졌어요.

밤새 내린 눈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은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옷차림입니다. 스키복 바지에 부츠, 장갑까지 철저히 준비하고 학교에 왔네요. 이런 준비를 무시하고 수업을 하기는 힘들터. 그래도 아이들 약을 올리려고 더 힘드어 말합니다. “수학책 펴라~” 아이들은 잔뜩 실망한 목소리로 “다른 반도 다 나가서 놀아요. 우리반도 나가면 안돼요?” 어떤 친구는 사정하는 게 아니라 화가 나서 말합니다. 그래도 짐짓 목소리를 깔고 수업하는 척 하지요. 때를 잘 봐서 “그래! 나가자!” 합니다. “와~!!!” 하고 함성소리가 들립니다. 장갑이 없다고 다가온 친구는 면장갑 위에 위생장갑을 씌워줍니다. 쓰레기를 절대로 아무 곳에 버리지 않는다고 신신당부 합니다.

하다하다 청소할 때 쓰는 고무장갑까지 끼고 나가기도 합니다.

운동장에 나간 아이들은 옷이 젖든 말든 철푸덕 앉아 눈덩이를 만들고, 둘 셋이 모여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도 만듭니다. 운동장 오른쪽 비탈길에서는 눈썰매가 한창입니다. 이럴 땐 어찌나 차례를 잘 지키는 지, 줄이 얌전하게 한줄로 서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괜히 눈덩이 한 두개 던져보다가 후회합니다.

여럿한테 집중공격을 받거든요. 이때만큼은 수학 공부를 시킨 담임을 용서하지 않습니다.얼른 항복하고 교실에 들어가 물을 끓입니다. 책마루 도서관 김경희 관장님이 추천해준 그림책 <폭설>을 꺼내놓고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손이 뻘개져 들어온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코코아를 타 줄 요량입니다. 하얀 눈 세상에 뛰노는 아이들 소리와 조용한 교실에서 물 끓이는 소리,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홍은영 전주 인후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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