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실토실하게 안을 채우고 있다
토실토실하게 안을 채우고 있다
  •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 승인 2023.12.20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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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장군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미술관 절벽을 따라 빙벽이 생기고 고드름이 덧대어 있는 풍광은 혼자 보기 아까운 절경이다. 수일 전에 장맛비처럼 내린 비가 메마른 겨울 산을 적신 바람에 예년에 보지 못했던 멋진 풍경이 만들어진 것.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피해 책상머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돌이켜보니, 올해도 정말 많은 일을 해냈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한 미술관 리모델링은 많은 지인의 도움으로 큰 틀을 잡고, 그것을 기념하는 『세친구 동행』(2023.10.7 ~ 11.3) 초대전을 열었다.

 중국 구이저우미술관(貴州美術館)에서는 <격물개신(格物開新)(2023.6.16 ~ 8.27)> 기획전과 <동방의 전통과 현대미술>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저마다 처지를 인정하면서 각자가 중심이 되는 연대 필요성을. 토론을 넘어 자기만의 특성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구체적 실천’을 공유했다. 또한, 일본 나가노현립미술관(長野縣立美術館)에서 열린 <2023 중·일·한 국제현대미술전(2023.8.11 ~ 22)>은 각국 주요 미술가들이 모여 전시를 통해 직접 교류하면서 연대를 강화했다. 자기만의 특성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실천한 거다. 한편, 나가노시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체류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국제예술특구를 계획하고 있다. 인천공항 너머에서는 뭔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예술적 음모(?)가 멈추지 않고 있다.

 한·중·일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역사적 부침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최근에는 외교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들이 아주 민감하다. 이러한 시기야말로 예술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예술가들은 문제를 직시하는 직관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에 싫은 것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이 없다. 그래서인지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를 묶어서 문화예술 교류를 추진하려는 공동 인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힘과 이익으로만 움직이는 국제정치와 다르게 저마다 독창적 조형 언어로 각자가 중심이 되어 교류·소통·연대하는 능력이 있는 거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도리는 문을 쉽게 여닫을 수 있게 해주는 경칩의 둥근 중심축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를 비롯해 각국의 현대미술 현장을 시간과 공간 차원으로 연결해서,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되는 보자기 같은 열린 미술판을 깔려는 의도이다. 지난 12월 16일, 인도 케케이엘람재단과 연석산우송미술관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24년, 인도 케랄라에 한국 미술가 10명을 초청해서 인도 미술가들과 교류·연대하는 아트 캠프(2024.12.22 ~ 27)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2025년에는 연석산우송미술관 주최로 인도 미술가 10명을 초청해 한국·인도 아트 캠프로 연대를 이어갈 것이다. 인도는 땅이 넓어서 멀리 떨어져서 활동하는 미술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써 아트 캠프가 발달해 있다. 일정 기간 일정 장소에 머물면서 창작·토론·전시 등의 행사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예술적 연대를 강화하는 인도의 독특한 미술판 문화이다.

 겨울 나목은 메말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섬세하게 살펴보면, 그 가지 끝에서는 내년 봄에 피워낼 싹들이 토실토실하게 안을 채우고 있다. 혹한을 견디기 위해 자기 몸을 가볍게 덜어냄과 동시에 내년을 기약하는 게 자연의 지혜다. 누구나 나이 들어가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늙음이 낡음이 아니라 나이테를 더하면서 굵어지는 나무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청춘도 쏜살처럼 훅 간다. 더 딱딱해지기 전에 생각하고 행동하자.

 문리<연석산우송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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