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인물속으로] 한민족 역사문화탐방 (19)신재효
[걸어서 인물속으로] 한민족 역사문화탐방 (19)신재효
  • 이방희 기자
  • 승인 2023.12.20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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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판소리 여성 명창 진채선의 스승

BTS의 원조 동리정사 신재효의 교육혁신
 

유교가 국정 지표시대 여성의 사회진출은 5백여 년의 억압으로
숨겨진 재능 끼를 발휘하지 못한 채 3종지도에 발 묶여 살았다.
전라도 고창현 동리(棟里)선생 판소리 여섯마당 체계화 시키며
천하명창 진채선 습안교육 한 맺힌 겨레의 소리 혼불 지켜냈다.

영국은 일찍이 IQ 검사로 세계교육계에 방향성 제시를 하였으나
설문검사만으로 천부성을 알 수 없다는 미국교육계에 부딪혔다.
학습능률로 출세의 우열을 가늠하는 엘리트교육이 선봉에 섰고
타고난 적성개발을 중요시 하는 캐릭터 교육에 추격을 당했다.

전문 실용학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인 인문학이 강조되는 시기
교육문화계는 다양한 교육혁신으로 시행착오를 거듭 일으켰다.
이념과 종교 벽이 무너진 정신문화공백은 교육혁신으로 채우며
과학과 문명의 발전은 절대종교를 선택종교시대로 변화시킨다.

미국학회는 인간 행복을 교육이 책임진다며 행복학회를 만들고
행복지수를 내밀었는데 한국은 OECD국가 중 꼴찌를 기록하였다.
깜짝 놀란 국회가 국민인성교육 시안을 의결하기에 이르렀으나
인성교육만으로 감동있는 지성교육을 하기엔 시작부터 무리다.

혼란을 가중시키는 인성 교육용 도덕책은 대안이 될 수 없기에
교육은 교안에서 습안으로 타고난 1%의 천부성을 발굴해야 한다.
청소년 수련원을 궁궐보다 크게 지었던 진흥대왕 화랑정신으로
내 적성 내가 아는 교육혁신 K-한류 이정표를 설정해야 할 때다.

/백승기 박사

 

신재효 생가
신재효 생가

▲판소리 아버지 신재효 역할(신동만 나그네연맹 회장)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자랑스러운 음악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이다. 고수(鼓手)의 장단에 맞춰 노래(창/唱)하거나 장단 없이 서사적 사설(辭說)과 발림(몸짓)이 덧붙고 고수나 관객의 추임새가 어울려 신명난 한편의 종합예술이다.

판소리는 17세기경 등장하여 18세기 중반에는 조선 최고의 대중문화가 되었다. 판소리는 창법에 따라 크게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 그리고 중고제(中古制)로 나눈다. 판소리의 발생지 남원의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편인 운봉, 남원, 고창, 구례 등은 동편제로 무겁고 강한 가락이다. 서쪽인 전주, 익산, 보성, 광주, 나주 등은 서편제 판소리로 가볍고 부드럽다. 중고제는 충청도와 경기도 지역의 소리제로 지금은 전승이 거의 끊겼다. 한편, 순창 복흥 출신 박유전(朴裕全)은 계면조의 맑고 높으며 아름답고 슬픈 새로운 서편제인 강산제를 창시하기도 했다.

요즘은 지역이나 유파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명창별 작품별 창법이 더욱 다양해졌다.

19세기 중후반 고창사람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조선 팔도에 중구난방으로 전승되어 온 12마당의 판소리를 채집, 집대성하여 죽을 때까지 여섯 마당을 정리 완성했다. 그중 현재까지 전승된 것은 다섯 마당으로 춘향가(春香歌), 흥부가(興夫歌), 심청가(沈淸歌), 수궁가(水宮歌), 적벽가(赤壁歌)이다.

신재효 생가
신재효 생가

혹자는 동리의 업적을 폄훼(貶毁)하여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서민적인 판소리가 죽고 정형화되고 단순화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천부당만부당하다. 동리는 조선의 판소리를 규정하는 어떠한 신분도 직책도 아니었다. 그저 판소리를 좋아하고 즐기는 지방의 중인 신분이다. 그저 산만하고 각기 자유분방한 판소리를 이론화하고 정리하여 쉽게 배우고 발전시켜 전승하기 위한 수고였을 따름이다. 결국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수많은 판소리는 생명을 잇지 못하고 대부분 소멸하였다. 그러나 동리의 땀을 거친 판소리는 합리적이고 품위 있게 다듬어져 오늘날까지 전승되었다.

동리는 동편제 명창인 박만순(朴萬順), 김세종(金世宗), 전해종(全海宗), 김창록(金昌祿) 등과 서편제의 명창 이날치(李捺致), 김수영(金壽永), 정창업(丁昌業) 등을 이론적으로 교육하고, 활동을 위한 경제적 지원도 아낌없이 하였다. 특히 자신의 사랑방 동리정사(桐里情舍)에 교육공간을 마련하고 소리 선생으로 김세종을 기거하게 하며 후학을 양성하도록 물심양면 지원하였다. 결국 동리정사에서 수많은 명창들이 배출되면서 판소리의 전성기를 이었다.

동리는 이방과 호장을 역임하며 각종 연회를 준비하면서 광대 및 소리꾼들과 교류가 빈번하였다. 수요와 공급을 이해하는 중개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어린 아이들과 여성 소리꾼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소리판에 최초의 여성 소리꾼인 진채선(陳彩仙)과 허금파(許錦波) 등 빼어난 여류명창을 길러냈다.

끝으로, 동리는 판소리에 대한 당대 최고의 이론가였다. 그의 단가 <광대가(廣大歌)>를 통해 소리꾼이 갖춰야 할 4대 법례로 미모,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를 얘기했다. 소리꾼도 일종의 배우이니 인물을 제일로 꼽은 듯하다.

안타깝게도 동리가 사랑했던 애제자 진채선이 경복궁 낙성식에 참가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은 뛰어난 소리와 더불어 빼어난 미모였던 것 같다.

동리가비
동리가비

▲도리화가(박창보 국학박사)

2015년 상영되었던 도리화가는 온갖 역경을 뚫고 우리민족 최초의 여성 명창이 된 진채선(배수지 분)과 판소리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신재효(류승룡 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이 글에서는 스토리를 제외하고 관객 동원이나 배우들의 연기평 등은 거론하지 않는다.

진채선과 신재효가 처음 만난 곳은 어느 저자거리에서였다. 신재효는 자신이 부르는 심청가를 듣던 많은 관중들 중에서 유독 어린 소녀가 펑펑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쓰였다. 공연 중 소녀에게 다가간 신재효가 “울다보면 언젠가는 웃게 될 거야”라며 달랜다. 소녀는 병든 어미를 잃고 기생집에 맡겨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심청의 이야기가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유명한 소리꾼이 될 것을 다짐한다. 어느덧 처녀가 된 진채선이 쑥대머리를 웅얼대며 달빛에 귀가하는 신재효를 따라 말을 걸고 소리에 대한 열정을 보인다. 하지만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던 시대였고 그 이유를 뱃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거절한다. 그러나 진채선은 포기하지 않고 남장을 하여 신재효가 사재를 털어 제자를 양성하던 동리정사에 들어간다.

우연히 길을 지나가던 흥선군(김남길 분)이 개가 짖는 소리를 연습하던 신재효를 흉내 내며 “내가 개다” 하고 술을 한잔 하는 인연을 맺게 된다. 신재효의 소리와 뱃장을 높이 산 것이다. 당시 안동김씨 일족의 세도정치에 치여 상갓집 개로 멸시당하며 울분을 삭히던 흥선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춘향가 공연 중 상투가 풀리는 실수로 진채선이 남장여인임이 밝혀지고 신재효는 양반들에게 곤장을 맞게 되었다. 이 일로 오히려 신재효는 진채선을 제자로 인정하게 된다. 산에 들어가 폭포 앞에서 피나는 연습과 똥물까지 마시게 하는 과정을 거쳐 진채선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동리가비
동리가비

마침 천하를 거머쥔 흥선군이 대원군으로 봉해지고 1867년 경회루 낙성연을 열게 되었다. 전국의 소리꾼을 대상으로 한 경연에 신재효 팀도 참석하게 된다. 예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진채선이 남장여인임을 아는 양반들에 의해 탈락하게 되자 신재효가 흥선대원군을 독대하며 기회를 달라는 청탁을 한다. 그러나 신재효의 뱃장 없는 약한 모습과 천주교 신자 같은 모습에 실망하며 옥에 가둬버린다. 스승을 구하기 위해 진채선은 한양에 온 옛 기생의 도움으로 경복궁 재건 축하 잔치에서 소리를 한다. 소리를 들으며 진채선이 신재효가 청탁했던 남장여인임을 한눈에 알아본 흥선대원군이 낙성연에서 장원을 하면 신재효를 살려주겠다며 내기를 건다. 그러나 만약 장원을 못할 경우 두 사람 모두 참형에 처하겠다는 위협도 가하였다. 옥에서 풀려나 낙성연에 함께 참가한 신재효가 극도로 긴장한 진채선을 도와 결국 장원을 하였다. 다시 신재효와 독대한 흥선대원군이 진채선을 곁에 두겠다며 일방적으로 통고하였다. 이를 거절한 신재효는 권력자의 협박과 허울 좋은 관직을 제수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춘향이 되고 싶다며 신재효에게 보내는 진채선의 편지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불태워진다. 신재효가 제자를 그리며 쓴 도리화가는 아이들의 합창이 되어 진채선의 귀로 전달된다.

‘스물 네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 돌아오니 귀경가세 귀경가세 도리화 귀경가세

도화는 곱게 붉고 흼도 흴샤 오얏꽃이 꽃 가운데 꽃이 피니 그 꽃이 무슨 꽃고

웃음 웃고 말을 하니 수렴궁의 해어환가 해어화 거동 보소 아리답고 고을시고

찬란하고 황홀하니 채색채자 분명하다 도세장연 기이한일 신선선자 그 아닌가‘ 도리화가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24살 제자를 향한 절절한 사랑가라고 하기엔 너무 지나칠까? 혹자는 이미 연인 사이였으나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되어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을 담아낸 단가라고도 한다.

어느덧 10년 세월이 흘러 실각한 흥선대원군이 “가거라. 나는 이제 널 잡을 힘도 없다.”라며 진채선을 놓아준다. 눈보라를 헤치며 허위허위 동리정사로 돌아온 진채선과 늙은 신재효가 차례로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실제로 두 사람이 재회하였는지는 행적이 없어 알 수 없다. 아! 서로를 연모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맺지 못한 진채선과 신재효, 소리를 잘 하는 여자를 사랑한 흥선대원군과의 삼각관계가 글쓴이의 장탄식을 낳는다.

 

<기획취재팀>

▲취재기자단

△이방희 제2사회부장(부국장/팀장)

△임용묵 부장(제2사회부/고창)

▲자문위원

△박창보 국학박사

△백승기 도시공학박사, ‘무릉도원 상상캠프’ 슈퍼바이저

△김주원 (주)뱅기노자 대표, 교사

△고혜선 전 권번예술원 대표, 한옥마을사람들 대표

△고개희 전사들 사무총장, 교보생명 신논현지점장

△신동만 나그네연맹 회장

△윤재민 (주)RNS 대표, 신지식장학회 청년국장

△김세용 전사들 산악대장

△이주원 디자인 원 대표

 이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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