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5) 박상수 시인의 ‘외동딸’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5) 박상수 시인의 ‘외동딸’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3.12.17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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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딸’
 

 - 박상수 시인
 

 마음, 그건 어디 있는 건가요 흔들리던 속눈썹이 나를 떠나면 가득한 처녀자리 은하단이 곁에 내려와요. 낭만적인 테이블은 달그락달그락 안부를 묻는군요 문이 열리고 거대한 문어군과 악수하죠 당신도 닫힌 성운에서 치료받는 중이군요? 함께 앉으면어디 있는 건가요. 내 마음, 모노레일에 실려 서랍에 닿았다가 거두어지는 소리, 파산한 장난감 공장에 종일 비 내리는 소리, 별들의 연주가 리본 테이프처럼 날 감싸고 흘러요 내 마음속 오래 감추었던 광물 샘플들, 앤티크 브로치를 보여주죠, 우주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다르다네 랄랄라, 문어군 사라지는 노래를 들으면 멈춰 있던 케이블카가 다시 움직여요 밤의 궁전에 불이 들어와요 오늘은 여기도 별 같군요 난 왜 세계를 이렇게 떠도는 걸까요, 낯엔 햇빛을 흡수하고 밤엔 땅을 덥혀주는 내가 되고 싶었죠.

 
 <해설>

 이 시의 시적 공간은 현실과 다른 환상적인 공간이 지배합니다. 신비한 우주의 연주가 흐르고, 눈앞에 영롱한 세계가 펼쳐지면서 서정으로 변주된 어조가 판타지의 세계에 넘실댑니다. “흔들리던 속눈썹이 나를 떠나면 가득한 처녀자리 은하단이 곁에 내려오.”고, 시의 문이 열리자 현실과 유리된 “낭만적인 테이블”, “거대한 문어군과 악수”하는 판타지의 세계가 열립니다. 그리고 “당신도 닫힌 성운에서 치료받는 중이군요? 함께 앉으면”이라고 하여, 일인극의 쓸쓸한 어둠의 독백이 아니라 너와 내가 소통하는 유쾌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어서 “모노레일에 실려 서랍에 닿았다가 거두어지는 소리”, “파산한 장난감 공장에 종일 비 내리는 소리”가 생동감 넘치게 들려오고, “별들의 연주”를 함께 듣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내 마음속에 오래 감추었던 광물 샘플들, 앤티크 브로치”가 영롱하게 빛을 발합니다.

 이렇게 별이 뜨는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면 “멈춰 있던 케이블카가 다시 움직”이며, “밤의 궁전에 불이 들어”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세계가 절정에 이룹니다.

 나(외동딸)의 소망이 페르소나적 독백 어조를 통해 “낯엔 햇빛을 흡수하고 밤엔 땅을 덥혀주고 싶은” 발랄하지만 공손한 어조로 제시됩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각박하고 메마른 현실의 무대에서 외롭게 살아갑니다. 가끔은 현실에서 벗어나 로맨틱하고 판타스틱한 세계를 접할 수 있다면 행복이 아닐까요. 이 시처럼요.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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