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105>개인도 지자체도 운이 다하면...(2)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105>개인도 지자체도 운이 다하면...(2)
  • 김두규 우석대 교수(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 승인 2023.12.14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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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한 개인과 지자체 그리고 국가 모두 저마다 ‘운’이 있다. 운이 나쁘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없다.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피해자 코프스레’에 빠진다.

우리나라는 이제 부자 나라이다. “인구 5천만 이상 소득 3만 달러인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이다.”(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이렇게 “세계사에 유례없는 최단기간에 우리 민족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민족 DNA 덕분이다.”

금융위원장을 끝으로 현실정치에 거리를 두고 한민족 역사를 천착하고 있는 김석동 전 위원장의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나라 바깥을 향해 열린 세계국가를 다시 건설하고 있는데, 고구려 이래 최대의 국운 전성기”라고 말한다.(‘한민족의 DNA를 찾아서’).

이렇게 국운은 융성해도 개인과 지자체가 거꾸로 쇠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옛날을 고집하는 그들의 잘못이다. 풍수의 핵심목적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개천명·改天命)”에 있다. 구체적 실행방법은 “버리거나 바꾸거나 떠남”에 있다. 국가가 부자인데 하위 지자체가 가난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60대 중반을 넘어선 필자는 지금도 후회한다. 대학 전공을 독일어로 선택했다는 것을 후회한다. 대학교와 학과 교수들 먹여 살리느라 시골에서 소 팔고 논 팔아 바쳤다. 대학 1학년 때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우연히 고향 선배를 만났다. 독일어 전공임을 안 그는 “왜, 독일 가려고?”라고 빈정거렸다. 지금도 그 알 듯 모를 듯한 선배의 ‘웃음’을 잊을 수 없다. 왜 독일어를 선택했을까? 이유가 없었다. 성적에 맞추다 보니 그리한 것이다. 당연, 대학 공부가 재밌을 리가 없었다. 이틀 공부하고 하루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어찌어찌하여 독일 뮌스터대학으로 유학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차로 북쪽으로 4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처음 혼자 가는지라 기차가 멈출 때마다 일어나서 정거장 역을 확인하였다. 마주 앉은 군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짧은 대화이지만 지금까지 잊지 못한다.

“어디서 왔는가?”

“한국에서!”

“나도 동두천에서 근무했다.” 알고 보니 미군장교였다. 한국근무를 마치고 독일 근무 중이란다. 장교가 질문한다.

“왜 독일에 왔나?”

“뮌스터대학에서 공부하려고”

“전공이 무엇인데?”

“독일문학”

“왜 독일문학이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왜 내가 독문학을 하지?’

촌티가 졸졸 흐르는 젊은 동양인이 독일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을 그 미군장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때 기차가 멈추었고 장교는 하차하였다. 하차하기 전 악수를 청하며 따뜻한 덕담을 준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Guten Erfolg!)”

한때 외국어 수요가 급증하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대기업들이 ‘종합상사’를 만들어 외국무역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던 때와 ‘중동 건설 붐’이 활발하던 때였다. 필자가 유학가던 1980년대 후반은 이미 시대가 바뀌고 있었다. 외국어 수요가 한물가고 있었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어리석음은 이후 필자의 삶은 곤궁케 하였다. 필자를 이야기하려던 것이 아니다. 새만금과 전북 정치인의 ‘운’을 풍수로 이야기하고자 함이다(계속).

 

글 = 김두규 우석대 교수(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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