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구상나무의 교훈
크리스마스 구상나무의 교훈
  •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 승인 2023.12.13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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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접어들자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다. 곳곳이 크리스마스 장식과 조명으로 화려하다. 가정에서도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거실 한쪽에 트리 한 그루를 세워놓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푸근한 장면이다. 그런데 전 세계인들이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하는 구상나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것을 알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상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인 우리 나무가 맞다. 해외 식물학자에 의해 국외로 유전자원이 반출된 후 신종 나무로 학계에 보고됐으며, 이후 크리스마스트리로 상업화된 것이다.

구상나무는 분류학적으로 소나무과 전나무속 상록교목에 속한다. 한반도 추운 지대에서 서식하는 나무로, 덕유산, 지리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에서만 볼 수 있다. 특히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장관을 연출한다.

구상나무는 여러 유익한 효능이 있다고 보고돼 있다. 구상나무 추출물은 고혈압과 두통, 어지럼증, 아토피나 여드름 등에 탁월하다고 한다.

한국의 구상나무가 어찌하여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는지 사연이 궁금할 것이다. 1900년대 프랑스의 포리 신부는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식물종을 채집했다. 그중 분비나무라고 여겨지는 수종을 채집해 미국 하버드대 아널드식물원의 식물분류학자인 어니스트 헨리 윌슨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윌슨은 포리가 준 표본이 분비나무가 아니라 다른 종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나무, 잣나무, 분비나무 등 소나무과 나무는 비슷하게 생겼다. 특히 구상나무는 전나무와 매우 비슷한데, 전나무는 잎의 앞뒤 색이 같고 구상나무는 뒷면이 아름다운 은색을 띠는 차이점이 있다. 분비나무와도 매우 닮았으나 분비나무는 솔방울을 이루는 비늘의 뾰족한 돌기가 곧바르고 구상나무는 뒤로 젖혀지는 것이 다르다.

윌슨은 1917년 제주도를 찾아 직접 구상나무를 확인하고 구상나무를 새로운 종으로 여겨 학계에 신종이라 보고하였다. 학명은 그의 이름을 딴 ‘아비에스 코리아 윌슨(Abies koreana WILS)’이다.

구상나무는 형태가 원뿔형으로 균형이 잡혔고 나뭇가지가 튼튼하고 가시가 없어 조명이나 장식을 설치하기 편리하다. 연중 푸른 상록수로 겨울에도 잎 앞면은 신선한 초록색이며 뒷면은 눈이 내린 듯 은백색으로 화려하다. 심지어 향기까지 상쾌하다. 해외에서는 ‘한국전나무(Korean Fir)’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 크리스마스트리 중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는 구상나무 개량종만 90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생종이며 이름에 ‘코리아’가 들어감에도 우리나라는 구상나무 상업화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로열티를 하나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개량된 품종을 로열티를 지불하고 역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윌슨이 구상나무를 해외로 가지고 갈 때는 자원의 반출과 이용이 자유롭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14년 나고야 의정서(Nagoya protocol)가 본격 시행되었다. 나고야 의정서는 다른 나라가 소유한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할 때는 자원 제공국으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고 이익을 공유해야 하는 국제협약이다. 보유국의 권리를 인정하는 나고야 의정서가 더 빨리 시행되었다면 우리나라 구상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하는 나라들이 구상나무를 이용해 벌어들이는 수익에 대한 로열티를 우리나라에 지급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라산 침엽수림의 대부분은 구상나무로 이뤄졌다. 한라산 침엽수림을 위성사진으로 촬영한 결과, 20년 동안 침엽수림 면적이 33.3%나 줄었다고 한다. 산림청 발표에서도 어린나무 개체 수가 2018년 헥타르당 444본에서 2020년 212본으로 줄어들었단다. 이러한 심각성에 따라 현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2011년 한국 고유종인 구상나무를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했다.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 구상나무 중 대표성을 띠는 한 그루를 기준목으로 선정하고 이 나무의 표준유전체 지도를 작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 중 대표나무를 뽑아 유전체를 분석하고 잎, 줄기, 열매, 뿌리 등 생체 정보 등을 데이터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구상나무 보존을 위한 전략 수립과 복원 등에 필요한 과정이다.

유전자원은 한번 잃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다. 이것은 자원의 해외반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식물 질병으로 바나나가 멸종 위기라는 뉴스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과거 곰팡이병원균인 푸사리움 옥시스포룸(Fusarium oxysporum)에 의해 발생하는 식물 감염병인 파나마 병(Panama disease)의 확산으로 우리가 즐겨먹던 바나나 품종인 ‘미첼’이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이후 이 병에 견디어 내는 캐번디쉬 품종 바나나를 개발했으나 다시금 푸사리움 곰팡이의 변이인 TR4 (Tropical race 4)가 발견되면서 바나나 산업은 또 위기를 맞닥뜨렸다고 한다.

기후변화, 인구 증가 등으로 미래에는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되면서 미래 먹거리가 될 우수 자생자원의 소중함과 가치가 날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산업화로 환경이 파괴되고 육성 품종의 재배면적이 확대됨에 따라 근연 야생종이 빠르게 소멸하면서 농업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우수자원을 개발하는 것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농업유전자원의 지식재산권과 이익 분배를 놓고 세계식량농업기구(FAO)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자원보유국, 자원도입국 등 이해당사자 간 치열한 경쟁도 계속되고 있다.

유전자원은 인류를 먹여 살릴 식량자원이자 기초과학의 소재이며, 의약품이나 생명공학 산업의 재료가 되는 등 활용 가치가 크기에 잘 보존하고 지켜야 한다.

농업유전자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씨앗은행(genebank.rda.go.kr)은 한국 농업 분야에 활용될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 관리하고 국민에게 자원을 분양하며 자원 특성 정보도 제공 중이다. 현재 씨앗은행은 원예, 식량 등의 식물 275,722자원, 미생물 25,106자원, 곤충 387자원, 식물바이러스 971자원을 비롯해 총 336,050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질병 등 위기가 발생하면 다시 꺼내 재생시킬 자원도,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종자 저장고가 파괴되면 복원시킬 자원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각종 질병을 퇴치할 의약소재로 쓸 자원도 잠들어 있다. 이들을 잘 보존, 관리하여 다시는 구상나무와 같이 소중한 자원을 잃는 일이 없어야겠다. 많은 과학자가 씨앗은행의 종자를 연구에 활용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새롭고 우수한 자원들을 많이 발굴해내길 바란다.

남성희<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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