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 두 집 장만
[독자수필] 두 집 장만
  • 정석곤 수필가
  • 승인 2023.12.14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석곤 수필가

옛 어른들은 살아서 수의를 지었다. 관을 만들 널판을 장만하고 죽어서 묻힐 자리까지 마련했다. 옛 어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몇 해 전, 대학 후배가 쓴 수필에서 죽으면 집을 찾아갈 때 입고 갈 수의를 날받아 아내 거랑 지어놓아 안심된다고 했다. 윤달에 수의를 장만하면 병치레 없이 오래 산다는 말을 믿었을 성싶다. 나보다 예닐곱 살 많은 옛 동료는 자녀에게 부담을 안 주려 올 한식날 고향에다 사후에 갈 집을 마련했는데, 둘레 석에다 봉분, 그리고 석관까지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공적비도 본인이 살아있을 때는 안 세운다는데, 그것과는 다르리라 여기며 칭찬했다. 그러나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추모관 부부단으로 이사 오셔서 10년 가까이 혼자 계시다 어머니께서 소천하시자 함께 계신다. 아내는 추모관에 갈 때면 우리 몫 부부단을 사두자곤 했다. 부모님 가까이 ···. 자녀와 손주들이 성묘하러 올 때 한꺼번에 마치고 가면 좋지 않겠냐며 날 설득시키려 했다. 죽은 뒤에도 후손을 걱정하는 모성애가 지극하다. 지금 장례문화가 날로 변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떨지 모르니 자녀들 몫으로 돌리자며 달랬다.

  예년에는 추석 앞날은 부모님을, 추석날에는 고향을 지키고 계신 증조부모님과 조부모님 성묘를 했다. 올해는 추석 다음 날에 부모님 성묘를 하러 갔다. 조상에 대한 효심은 북적북적 추석날이었다. 공원묘지, 추모정원, 추모관 등이 모인 장례문화 단지라 그렇다지만, 코로나19가 그동안 묶어두었던 조상 공경 정신을 풀어주어 그런가 싶었다.

  오늘도 자녀와 손주들에게 나로 부모님이니까 조부모님과 증조부모님이시다는 말을 녹음을 틀 듯했다. 성묘 기도를 한 아내는 보물을 발견한 양 소리쳤다.

  “제일 위층이 비어 있다!”

  사그라들었던 부부단 이야기를 곧바로 끄집어낸 게 아닌가? 아내는 부모님 위층이니까 사두자며 다그쳤다. 자녀들은 듣고만 있었다. 값이 엔간하면 사고 싶기도 했다. 아내 이야기가 내 맘을 비집고 꽈리를 틀었나 보다.

  아파트의 값이 층수에 따른 것같이 부부단도 마찬가지다. 같은 열에서 성인의 눈높인 4, 5층이 가장 비싸고 위아래로 오르내릴수록 낮아진다. 8층이라며 320만 원이란다. 추모관 대표와 조금 안다는 핑계로 한참 값을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50만 원은 넘을 수가 없다기에 못 이긴 척하며 계약했다. 마음이 편안하고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어린이들이 모래밭에 모래성을 쌓고 놀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면 그만두고 헤어진다. 만약 그때 아이 하나가 갈 집이 없어 서성거린다면 얼마나 불안하고 안타까울까? 나는 시후에 한 아이처럼 그럴 필요가 없어 행복하다. 내 영혼이 갈 하늘 집 준비는 어린 시절이지만 청년 때에 더 힘을 기울이고 있다. 게다가 죽으면 몸이 머물 집도 장만했으니 말이다. 이제 평안한 마음으로 하늘 집을 그려보며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기만 하면 된다.
 
정석곤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