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가 풍성한 겨울을 만든다
호랑가시나무가 풍성한 겨울을 만든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3.12.12 15:48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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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12월 마지막 달력을 보면서 퇴색된 자기의 얼굴에서 주름살만 보인다면 호랑가시나무를 찾아가 보아라. 겨울에도 푸르고 성스럽게 변산 바닷바람으로 겨울의 양지바른 숲에서 사는 나무와 손잡아 보면 안다. 뾰족한 잎과 붉은 열매와 가시가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크리스마스카드에서 본 적 있는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카드에 글을 쓰고 짧은 추억을 옮겨 놓은 삐뚤빼뚤 그림을 그렸던 옛사랑도 눈에 어른거릴 것이다. 우연히 변산 해변을 돌면서 낮은 산에서 햇살을 혼자서 품고 있는 나무가 호랑가시나무였을 때 차를 멈추고 나무의 둘레를 돌면서 대화했다. 양지에서 만난 나무는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한꺼번에 떠올리면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라는 메시지를 호랑이발톱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가 있는 잎이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호랑가시나무는 예수를 상징한다고 친구가 귀띔한다. 뾰족한 잎과 가시와 붉은 열매를 보면서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사람에게 마음을 정화 시키는 신선한 자태에서 12월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깨달음이 스쳤다. 호랑가시나무처럼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실타래처럼 꼬임을 풀어보아야 한다.

호랑가시나무의 표정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들린다. 눈으로 소리를 읽는다. 붉은 열매에서 노래가 들려 온다. 분명 파도 소리가 아닌 나무의 가시 잎끝에서 노래가 들리는 건 소리 없는 나의 삶이다.

저물어 가도 평생 사랑을 해도 아직도 떨어져 있으면 그리운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아직도 그리운 사랑은 12월의 마지막 달력에서 퇴색되지 않을 내년의 시간이 문을 활짝 열고 종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호랑가시나무에서의 순간순간 바람도 흐느끼는 소리 속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가슴에 담아본 싱싱한 초록의 선물이었다.

거울을 닦고 또 닦아서 나의 얼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미소를 볼 수 있을 때까지 응축된 나의 감정을 거울에 그려보면 현재의 내가 보이지 않을까. 상처로 기억되는 올해의 달력은 불에 태워버릴 일이다. 내년 이른 봄에 필 순백의 목련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야 꽃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24개의 곡으로 구성된 가곡집에서 ‘보리수’를 들어 보는 12월이다. 새해 달력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갈 때까지다. 오스트리아 낭만파 음악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는 “나는 가곡을 위해 태어났다”라고 했다. 가난과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작곡해서 괴로움과 슬픔이 작품 속에 숨어 있었다. 1

12월을 보내는 나의 감정이 나타나 있다. 매우 절망적인 시에 아름답고 슬픈 곡은 연인에게 버림받고 떠나는 나그네의 외로운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에 방황할 ‘겨울 나그네’에서 공황장애 문턱을 넘나드는 사람에게는 치유될 것 같다.

12월은 예술 단체에서 각종 상을 시상하는 기사가 뜬다. 사진과 기사를 읽을 때마다

박수를 보내야 할 상인가를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상에도 질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야생의 질서는 덩치 순인가 보다. 아프리카 사바나 물웅덩이에서 싸우지 않고 질서가 있게 물 마시는 동물들을 보았다. 철저하게 덩치 순이다. 코끼리가 물을 마시고 돌아가면 기린, 얼룩말, 타조가 순서를 기다렸다가 물을 마시는 광경을 보고 야생의 질서에서 깨달음이 있었다.

참매의 새끼는 둥지에서 서열이 정해진다. 새끼들의 치열한 싸움으로 조용한 포식자가 정해진다. 말똥가리도 그렇고 황조롱이도 쥐, 박쥐, 도마뱀 등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서 지붕 위에서 서둘러 나는 법을 배운다. 시간에 쫓기며 상당한 노력으로 시력과 발톱, 강력한 부리 만들며 살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렇듯 사람도 경쟁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며 사는 게 소외되지 않고 외롭지 않은 노년의 삶이 만들어진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지친 나를 기억해 주고 안아주면서 “사랑한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꼭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은 호랑가시나무처럼 성스러운 삶을 만든다.

욕심을 벗어던져야 12월이 곱게 간다. 꽃길이 그렇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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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2023-12-14 16:24:22
항상 새롭게 도전하시는 모습 세월이 거꾸로 가는것 같습니다 큰산처럼 우뚝서계시는 모습 너무좋고 닮고싶은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정미경 2023-12-14 16:07:14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지친 나를 기억해 주고 안아주면서 “사랑한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꼭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말씀, 정말 마음에 위로가 되고 와닿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의 영혼한 짝궁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늘 응원해주고, 사랑해지고 지켜주기에...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순이 2023-12-13 10:28:41
존경하고 사랑합니다.선배님.너무 감동입니다.
이정애 2023-12-13 08:20:52
보리수를 들으며 아직도 떨어져 있으면 그리운 사람을 떠올려보는 아침입니다~~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김영자 2023-12-12 23:24:11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