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소에 대한 약사(略史)’
- 박형준 시인
옹기는 뒤뜰 장독대에
앉아 있는 것만은 아니다.
허리가 동그란 옹기를 안고 있으면
어머니를 안고 있는 기분이 든다.
두툴두툴한 옹기의 촉감이 설운 것도 그 때문이다.
지붕이 없는 변소에 앉아
어두컴컴한 땅 밑에 웅크리고 있는
옹기의 구멍을 내려다본다.
옹기는 이 집 내력을 알고 있다.
태어나서 내가 버려졌다는 느낌으로 울었던 것도
저 밑을 바라보면서이다.
파묻은 김칫독처럼 발효하는
옹기는, 저 움푹움푹 팬
밑바닥에서 깨어져나가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썩는 것은 따뜻하다.
지붕 없는 설움으로 떠도는 식구들이
들락거리며 별과 새와 구름을 보았던 곳,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해설>
이 시는 저를 단박에 어린 시절의 무섭던 시골집 뒷간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변소는 일상의 공간에서 좀 떨어진 음습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무서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장독대에 있을 법한 옹기가 변소에 묻혀있습니다. 그래서 “허리가 동그란 옹기를 안고 있으면/ 어머니를 안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이는 두툴두툴한 옹기의 촉감이 슬픈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지붕이 없는 변소에 앉아/ 어두컴컴한 땅 밑에 웅크리고 있는” 어둠의 옹기에서 자신의 근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최초로 “태어나서 내가 버려졌다는” 아픔을 절박하게 깨닫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지붕 없는 설움으로 떠도는 식구들이/ 들락거리며 별과 새와 구름을 보았던” 음습한 변소가 생명의 공간이 됩니다. 온 가족의 똥이 모여 썩어가는 옹기는 “김칫독처럼 발효”하고, “저 움푹움푹 팬/ 밑바닥에서” 깨어져 나가는 아픔으로 꿈을 잉태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에게 옛적 변소의 옹기는 모태인 동시에 무덤이었습니다.
오늘 편안한 변소에 앉아 있으니 고향의 시골집이 그리워집니다. 시골에서 살며 불편했던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드네요.
강민숙 <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