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훈장 흰머리
세월의 훈장 흰머리
  • 김해자 진안군미용사협회 회장
  • 승인 2023.11.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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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진안군미용사협회 회장

 미용실에 노래가 퍼진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랫말이다. 하루종일 미용실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흥얼거리는 나 자신을 본다.

 돌이켜보니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미용사로 살아오고 있다. 미용사는 손님의 머리를 매일 만지며 산다. 연초에 검은 머리 손님이 연말이 되면 흰머리가 올라오는 일도 있다. 세월의 훈장이다. 흰머리 손님은 대부분 염색을 한다. 흰머리를 감추고 싶은 생각에 지극정성으로 염색을 한다. 젊게 보이고 싶은 욕망인 것이다.

 ‘천자문(千字文)’에 얽힌 흰머리 이야기가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 무제(武帝) 시절에 학자(學者) 주흥사(周興嗣)가 있었다. 왕희지(王羲之)의 글을 좋아했던 무제(武帝)는 어느 날 주흥사(周興嗣)에게 “왕희지의 글을 하루 만에 천 개의 글자로 편집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에 주흥사(周興嗣)는 잠을 안자고 하룻밤 사이에 1구(句) 4자(字) 형태로 총 250개의 문장으로 천자(千字)를 만들었다. 이 일을 마치고 나서 보니 주흥사의 머리카락과 수염이 모두 하얗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천자문(千字文)’을 다른 이름으로 ‘백수문(白首文)’이라고 한다. ‘백수문(白首文)’이란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글’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과도한 스트레스는 흰머리가 생기는 원인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흰머리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세월의 흔적이다. 이 흔적을 잘 남겨야 한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지나온 흔적을 돌아보는 자리가 있다. 바로 망년회(忘年會)다.

 망년회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한 해(年)를 깨끗이 잊어버리자는 모임(會)이라는 뜻이다. 지나간 일은 잊자는 말이다. 그래서 ‘잊을 망’(忘)을 쓴다. 이 망년회가 일본 풍습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1400여 년 전부터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고 해서 섣달 그믐께 지인들과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풍속이 있었는데 그러한 그들의 ‘망년지교(忘年之交)’라는 풍속에서 글자를 빌려 망년회(忘年會)가 됐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송년회(送年會)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잊을 망’(忘)이 아니라 ‘바랄 망(望)’을 써야겠다.

 지나온 흔적을 잊자는 말은 연말이 다가올수록 미용실을 꽉 채운다. 손님들의 대화가 대부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 일이다. 몸보다 마음이 급한 연말이면 희망찬 내년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지나온 발걸음이 언제나 아쉽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롭게 한해의 출발을 다지는 지점에서 모두 지나온 흔적을 잘 살펴야겠다. 그 세월의 흔적은 나를 더 강건하게 해 줄 것이다.

 세월의 흔적인 흰머리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흰머리의 자연스러움이 삶의 연륜을 나타내준다. 그 연륜이 쌓이고 쌓여 내가 성장하고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동력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매년 맞이하는 연말이지만 언제나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점이다. 그런 과정에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성장해왔다. 힘겹고 어려울 때일수록 연말연시가 기다려지곤 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흰머리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살아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나를 만들어야겠다. 지금은 연말이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다.

 
 김해자 <진안군미용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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