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필수의료의 위기 그리고 의대 정원 확대
의료사고, 필수의료의 위기 그리고 의대 정원 확대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3.11.2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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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집단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법당국에서는 담당 간호사 2명, 전공의와 주치의 3명 등 총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었다. 그리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받은 신생아중환자실 주치의 조수진 교수 등 의료진 3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당시 지질 영양제를 조제, 투약하는 과정에서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진에 의한 원내감염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해당 간호진뿐만 아니라 처방한 전공의 그리고 중환자실 담당 교수까지 의사들을 직무 유기나 관리 소홀로 그 법적 책임을 물어 구속까지 하면서 의료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해당 의료진은 1심, 2심 무죄를 걸쳐 대법원에서 2022년 12월 전원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5년 동안 법정 다툼해야만 했다.

해당 판결의 요지는 업무상과실치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업무상 과실과 치사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나 그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병균이 검출된 주사기는 피해자를 포함한 다른 신생아들의 기저귀, 주사기, 거즈 등과 함께 버려져 있었던 것이므로 주사제 취급과정에서의 주의의무 위반이 실제로 주사기의 오염으로 이어진 것인지 명확히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지질 영양제의 오염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것이 원인일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한 경우는 업무상 과실치사로 보기 어렵고 예고된 인재로서인 경우만 업무상과실치사가 인정된다는 게 판결의 요지였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진료상 과실 혐의에 대해 형사고발과 구속까지 이루어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건으로, 2020년대부터 이어진 소아과 지원자의 급감에 큰 영향을 주었다. 소아과 의사는 기대 소득이 진료과 중 상대적으로 낮은 편으로, 사명감 혹은 진료과목 자체에 대한 선호가 가장 큰 지원 동기였던 분과인데 이 사건은 (의사의 감염관리 책임이라는 다소 실체가 불분명한) 진료 과실 ‘가능성’만으로도 형사 기소와 구속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의의가 있었다.

비록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이로 인한 소아과 진료 인력의 급감이 후일 길병원의 소아과 입원 진료 중단이나 세브란스 병원의 소아응급실 폐쇄 등으로 이어지는 소아과 응급의료 체계의 붕괴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사건으로 한국 의사들에게는 깊이 각인된 사건으로 남았다.

특히 인력 부족 등 과로가 일상화된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던 사법당국의 과거 관행이 뒤집힌 것은 의료인들과 병원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사건 당시 유일한 소아과 전공의로서 남들은 다 힘들어서 도망갈 때도 혼자서 가장 끝까지 환자 곁에 남아 매일 당직을 서던 강한 책임감을 가진 의료인들이 결과적으로 가장 큰 화를 입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만성적 인력 부족 상황에서도 산과나 응급실, 소아 중환자실 등의 필수의료는 어떻게든 억지로 유지하던 관례가 이 사건 이후 많이 변화했다.

내로라하는 대형종합병원에서도 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사례와 같이 인력 부족이 발생하면 해당 부서를 축소 운영하거나 아예 일시 폐쇄하는 등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현상이 비일비재해졌다. 의료계는 이 사건이 비록 감염관리 미비, 고질적 인력 부족 등 병원 시스템 실패의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를 개별 의료진에게 물었던 불합리한 처사였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은 의료계에 상당한 충격을 주어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소송이 이어지는 5년 동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113.6%(2018년)에서 25.5%(2023년)로 추락했다.

교과서대로 치료해도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환자가 사망하면 소송 걸리고 감방에 갈 수 있다는 생각, 기피 과는 피부·성형보다 돈은 못 벌면서 위험 부담은 훨씬 크다는 자각이 이 일을 계기로 의사들 사이에서 퍼졌다고 한다. 특히 원로 교수마저 가차없이 구속되는 모습은 의과대학 학생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필수의료와 지역 의료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의·정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국민 여론을 보면 압도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으로 필수 의료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의사들은 주장하고 있다. 의사 수 늘리기보다 선행되어야 할 수가 문제 등 여러 가지 불합리한 요소가 많지만 우선 필수 의료분야의 의료사고나 분쟁으로 인한 민·형사상의 부담을 개선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과실이 없는 선의에 의한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법정 구속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책임보험, 조정·중재, 합의, 형사처벌 특례조항 등 비 형사적 구제 방법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중환자나 응급의료 분야 대신 미용·피부과처럼 생명을 다루지 않는, 소송 위험이 적은 분야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국민 모두를 위해 합리적 제도 개선을 희망해 본다.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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