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코뿔소와 상생금융 1조 플랜
회색코뿔소와 상생금융 1조 플랜
  • 한종관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
  • 승인 2023.11.2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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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관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

 회색코뿔소는 육상동물 중 코끼리 다음으로 몸집이 큰 동물이다. 성격이 온순하여 평소에는 잠을 자거나 풀을 뜯으며 조용히 지내지만 한번 돌진하면 시속 50km까지 달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이렇게 무서운 회색코뿔소가 우리의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2016년 세계경제연구소의 대표인 마셜 부커(Michele Wucker)는 저서 「회색코뿔소가 온다(The Gray Rhino)」에서 ‘위험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여 맞이하는 위기’를 회색코뿔소라 하였다. 이러한 회색코뿔소는 위험신호를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하거나 책임감이 부족한 경우 우리 곁에 불쑥 등장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최근 소상공인은 고물가·고금리·불경기의 3중고로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은행의 신용대출금리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2.69%에서 금년 9월 6.59%로 2.4배나 올랐고, 자영업자 대출연체율도 0.21%에서 0.46%로 급등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용도가 취약한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대위변제율도 1.01%에서 3.73%로 3.7배나 증가하였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의 사례를 적용하여 추정한 결과 내년에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회색코뿔소가 호시탐탐 공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긴축으로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민생예산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금리로 연체율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긴축정책은 소상공인을 폐업과 도산으로 내몰 위험이 크다. 이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저금리로 대환하거나 필요한 자금을 공급해 주어야 하지만 코로나 극복과정에서 나라의 곳간이 비었으니 정부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답은 상생금융(相生金融)에 있다. 노자의 도덕경 상편 제2장에 ‘故有無相生 難易相成…’이란 구절이 나온다. 자고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살게 해주거나 태어나게 해주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어준다’는 의미이다. 정부의 재정이 부족하면 민간(은행)과 공공이 서로 협력하여 상생의 길을 열면 되리라.

 지난 8월 전주시 소상공인들에게 뜻밖의 단비가 내렸다. 전북신보의 전주시 희망더드림 특례보증이 그것이다. 전주시가 보증재원 36억원 전북은행이 44억원을 출연하여 80억원의 종잣돈(Seed Money)를 만들고, 전북신보가 12.5배의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발동하여 1,000억원의 희망더드림 특례보증을 지원하였다. 새벽 5시부터 고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었고 3일만에 자금이 모두 소진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전주시·전북은행·전북신보가 상생정신으로 협력한 결과다. 전주시 희망더드림 특례보증은 상생금융의 모델이 되어 다른 시군(市郡)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14개 시군과 은행들이 모두 내년 예산에 반영하여 상생금융에 적극 참여할 태세이다.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한다 했던가? 전북신보는 성공적인 상생금융을 뒷받침하기 위해 2가지의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첫째, 내년에 설립이후 최초로 1조원 이상의 보증을 공급하기 위해「상생금융 1조플랜」을 수립하고 있다. 사람은 혈액이 잘 순환돼야 건강하고 나무는 물이 충분해야 잘 자라는 것처럼 기업은 자금이 잘 돌아야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을 통한 전북경제 활력회복을 위해 전북신보가 견인차 역할을 자처할 작정이다.

 둘째, 기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업무인프라(지점)을 8개에서 12개로 대폭 확충하고 있다. 시군별 기업체수와 접근성을 고려하여 4개 지점(부안, 고창, 완주, 디지털금융)을 순차적으로 신설해 나갈 예정이다.

 내년은 전라북도가 특별자치도로 새로이 출발하는 해이다. 아쉽게도 정부의 긴축재정으로 지방교부금이 줄어 민생예산 확보가 원활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로 뭉치면 길이 있다. 지자체와 은행이 협력하여 재원을 조성하고, 전북신보가 승수효과를 발동하면 1조원의 상생금융은 가능하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 서로 협력하여 잘 살아가자는 상생의 가치. 지구상의 생물 중 유일하게 자각성을 가진 우리 인간이 먼저 이해하고 지켜야 할 준칙이 아닐까?

 
 한종관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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