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4> 차의 길 57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4> 차의 길 57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3.11.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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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핀 아름다운 차꽃.jpg

  푸른 가지 초록 잎에 옥 같은 꽃 붙었으니
  옹기종기 열린 모양 별처럼 반짝이네.
  옥천의 몇 사발 차 무엇이 부러우랴.
  차꽃 주위 맴도니 심신이 절로 맑아지네.

 

  위의 시는 이정(李楨, 1512~1571)이 차꽃을 읊은 “추일다화(秋日茶花)”라는 시이다. 꽃을 옥에 비유하며 주렁주렁 달린 꽃 봉우리가 별처럼 반짝이는 것같고, 중국 당나라 시인 노동(盧仝)의 「칠완다가」에 나오는 차도 부럽지 않다고 하였다. 차꽃 주위를 맴돌며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있는 것 같다.

  차꽃에 대한 시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노래한 구절이 간혹 있다. 양력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절정을 이루며 여러 장의 하얀 꽃잎에 노란 수술이 달려있다. 지금쯤이면 차꽃이 떨어질 때가 되었으니 올해 차꽃을 보지 못했다면 상상을 해보면 좋을 듯하다. 초의(1786~1866)가 지은 「동다송」에서도 차꽃의 맑음을 칭송한 구절이 있다.
 

  해 맑은 차꽃은 서리에 씻긴 듯 무성히도 가을에 피었네.
  차꽃은 고야산 신선이 분바른 듯 맑은 살결이요
  염부단의 황금이 꽃술에 맺힌 듯하여라.
  맑은 이슬에 말끔히 씻긴 듯 푸른 줄기요
  차싹은 아침 이슬 함초롬히 머금은 푸른 새의 혀와 같구나.

 

  차꽃을 고야산 신선과 염부단의 황금에 비유하며 봄에 피어날 차싹을 기대하는 구절이다.

 해 맑은 차꽃이 서리가 내려도 무성히 피었고 하얀 꽃은 신선이 분을 바른 듯 맑은 살결과 같으며 꽃술은 염부단의 황금과 같다고 비유한다. 푸른 줄기는 맑은 이슬에 씻긴 듯하고 차싹은 아침 이슬을 머금은 푸른 참새 혀와 같다고 한다.

  초의는 이백(李白 701~762)의 글을 인용하여 “형주와 옥천사의 맑은 계곡과 산에는 차나무가 널리 퍼져있는데 가지와 잎은 푸른 옥과 같으니 옥천사의 진공이 항상 따서 마신다”는 주해를 달아 보충 설명하고 있다. 이백은 중국의 시선(詩仙)이라 칭송되며 최고의 시인으로 술을 즐겨 주선(酒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젊어서 여러 지방을 주유하였으며 늦은 나이에 벼슬에 올랐으나 안록산의 난으로 불우한 만년을 지냈다. 차에 대한 여러 편의 시를 남겼으며, 많은 다시(茶詩)에서 등장한다. 이렇듯 차는 많은 선비와 시인과 예술가 종교인들이 즐기며 같이 했다.

  자연과 합일을 꿈꾸며 시끄러운 세상사 잊고 자연에 묻혀 자신을 수양하고 후학을 기르기에 여념이 없던 선비들 그들의 시속에 차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현대인에게 결핍된 미덕이 있었다. 물질적 욕망을 절제하는 청아한 인품을 가졌고 다른 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신의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가르쳤다.

  이런 그들에게 차는 하나의 마실거리에 불과했을까. 차가 좋으니 차꽃도 좋을 것이고 차나무도 옥과 같았을 것이다. 차를 마시는 마음도 즐거웠을 것이다. 요즘 차는 대중이 즐기는 음료가 되어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차의 유익함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차를 즐기는 마음이 각자 다를 것이다. 차를 닮고자 했던 선인들의 마음과는 달리 차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깊어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가끔은 차를 권하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글=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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