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기술인을 아시나요?
환경기술인을 아시나요?
  • 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 승인 2023.11.2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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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1991년 3월 17일, KBS 대구방송총국에는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제보가 빗발친다. 그날 9시 뉴스에는 사흘 전 페놀 30톤이 유출되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 되었다.

 유출된 페놀은 강을 따라 대구 수돗물의 70%를 공급하던 수원지로 흘러들어 갔다. 정수장에서는 단순히 염소 소독을 늘려 대응했으나, 페놀이 염소와 반응하여 악취가 500배 이상 강한 클로로페놀이 되고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당시 낙동강 유역 주민들은 설사, 복통, 두통을 호소했고 유산한 임산부까지 있었다. 사건을 일으킨 두산전자는 30일의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공장장 등 6명이 기소되었다.

 나아가 환경처 장차관이 경질되었으며 국회는 「환경범죄단속법」을 제정하는 등 환경오염이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겨우 페놀 30톤이 유출된 이 사건 이후, 환경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전국에 수많은 환경단체가 결성되었다.

 2021년 전국 폐수배출사업장의 1일당 폐수발생량은 5백만 톤이 넘지만 연일 대규모 환경오염 사건·사고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사업장의 오염물질 배출시설, 방지시설이 정상 가동하도록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환경기술인’이다. 물환경보전법, 대기환경보전법 등 주요 환경법령에 따르면, 환경기술인의 자격 기준은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환경업무 경력자부터 기술자격 소지자까지 다양하지만, 사업장마다 최소 1명은 임명해야 한다. 대기와 폐수 분야 사업장만 해도 2021년 기준 12만 개가 넘으니 환경기술인의 수효를 짐작할 수 있다.

 ‘백조의 발놀림’이라는 관용구가 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나 실은 부단한 노력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은 환경기술인들이 백조의 발처럼 움직이고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사업장에서는 환경기술인이 백조가 아니라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고 있는 듯하다. 경제적 이윤만을 고려하여 환경관리 업무를 비용으로만 여기는 경영 관행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당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논고문에 따르면, 현장에서 생산부 차장과 공장장에게 페놀 유출 사실을 보고했으나 윗선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평소 상부에서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환경기술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사건이 이토록 악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기업이 이윤 추구를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다.

 올해 6월 유럽의회 본회의에서는 ‘공급망 실사지침’이 통과되었다. 기업이 생산, 유통, 운송 등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환경 문제를 점검하여 조치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예컨대 지침을 적용받는 기업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공급망의 다른 기업들이 기준 이상으로 환경오염을 일으킨 경우에도 벌금이나 공공 조달 입찰 배제, 수출 금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2017년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6개 국내 기업에 대하여 환경 피해 등을 이유로 투자를 철회한 바 있다. 이처럼 향후 국제무역 규범은 높은 수준의 환경 기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제 환경기술인을 단순히 환경오염 방지시설을 운영하면서 위법이 없도록 관리하는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산업현장의 최전선에서 환경과 국민건강을 지키고,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이라고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머지않아 환경기술인의 업(業)이 ‘비용’이 아닌 ‘가치 창출’로 인정받으며,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어 날개를 펼칠 날을 기대해 본다.

 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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