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2) 천승세 시인의 ‘종’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2) 천승세 시인의 ‘종’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3.11.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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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 천승세 시인
 

 종은 울음을 떠나 보내기 위하여
 이렇게 부들부들 떨며 살갗을 찢는다고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부끄럽다, 오늘
 종소리부터 껴안는 새벽 

 종은 떠났던 울음들을
 다시 모으며, 끌어들이며
 안으로만 안으로만 굳어 청동이 됐으리라는
 참회
 하나
 

 <해설>

 천승세는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로 널리 알려졌으며,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쓴 리얼리즘 작가로 유명합니다. 소설로는 《포대령》, 《황구의 비명》 등이 있으며, 한국 사회를 정신문화사적 비평을 곁들이면서, 그 변화를 묘사해 나가는 세태소설입니다. 「만선」은 대표적인 희곡으로 연극계 부동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종소리를 두고 “종은 울음을 떠나보내기 위하여/ 이렇게 부들부들 떨며 살갗을 찢는다고”라고 하여, 살을 찢는 온몸의 아픔을 소리에 실어서 세상에 내보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밀레종에 슬픈 사연이 녹아들었고, 사찰의 종들이 각기 묵직한 사연을 품고 있나 봅니다. “종은 떠났던 울음들을/ 다시 모으며, 끌어들인”다고 하는 것은 종을 떠난 종소리가 두루 세상을 적시고 회귀(回歸)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이 “안으로만 안으로만 굳어 청동이 됐으리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시인이 “종소리부터 껴안는 새벽”을 두고 왜 부끄럽다고 했을까요? 종을 작가로 대체하면, 작가는 살을 찢는 아픔의 산물인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고, 그 영향력을 돌려받으니 작품에 대한 참회로 보입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사회를 선도할 선구적인 책무를 지녔습니다.  

 요즘 친일문학상 폐지에 대한 담론이 뜨겁습니다. 당시 친일작가는 선봉에 서서 젊은이들을 전쟁터와 정신대로 내몰았고, 그 대가로 호의호식을 누렸습니다. 친일작가를 기리는 친일문학상은 이제 청산돼야 할 적폐입니다.  

 천승세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흘렀지만 시 「종」이 작가들을 향해 무겁게 ‘경종(警鐘)’을 울리는 것만 같습니다. 작가 정신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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