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농생명바이오산업의 조용한 혁명
전북 농생명바이오산업의 조용한 혁명
  • 장한수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산업혁신본부장
  • 승인 2023.11.2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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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수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산업혁신본부장

 “시상에 서울 사람들은 물을 사마신디야, 우리 꺼정 물을 사마시는 날이 온디야.” 저 먼 제주도나 백두산에서 담아 온 생수를 살 때마다 팽나무 그늘이 웅장했던 고향 마을 우물가와 항상 ‘시상에(세상에)’로 말을 시작하시던 고모할머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소부재(無所不在)해서 언제나 공짜라고 여겨졌던 물은 2조 3천억이 넘는 엄청난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또 한번은 꽤 오래전 대학원에 다닐 때였다. 연세가 지긋하신 인근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분께서 시험작물 생육상태가 좋지 못해 지상부 센서와 근권부 토양 센서값을 분석하면서 고민하던 연구원들에게 조용히 말씀을 하셨다. “석회 가루를 뿌려.” 그 말씀을 듣고 우리 연구원들끼리 서로 멋쩍게 웃었던 적이 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데이터 농업 권위자인 칼렙하퍼(Caleb Harper) 교수가 어느 강연에서 ‘컴퓨터로 기후를 모사해서 지구상 모든 곳에서 다른 곳의 식물을 재배할 수 있다. 다만 오랫동안 농업을 체험한 농부들의 통찰력과 지혜가 후배 세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라는 취지로 발표하던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재화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물이 엄청난 시장으로 되돌아왔듯이 차곡차곡 쌓아 두지 못하고 구식 또는 관행농법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흘려보내는 선배 농부들의 통찰력이 ‘데이터 농업 컨설팅’이라는 유료 서비스로 새로운 시장을 열어갈 전망이다. 이미 네덜란드를 비롯한 농업선진국들에서는 이와 같은 것들이 현실화 된 상황이다. 이제부터라도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을 수 있는 ‘전북 농생명 데이터 댐’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지역에서도 이러한 것들에 대한 싹이 움트고 있다.

 혁신도시에 자리잡은 농촌진흥청에 이어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고, 익산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기업체는 ‘약용작물 스마트팜 빅데이터 센터’로 선정돼 데이터수집과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한 유료판매를 시작하고 있다. 즉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농생명 현장 데이터를 다른 지역의 연구기관, 기업 등에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제한된 시설, 일부 품종의 작물에 관련된 데이터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각 고장을 대표하는 작물에 대한 재배법과 수확량 그리고 병충해 검측 데이터 등을 그 댐에 저장해야 하는데 관심과 예산이 너무도 부족한 현실이다.

 데이터 댐의 부재는 농업에 국한되지 않고 농산물을 원물 소재로 활용하는 고부가 산업인 농생명·바이오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다양한 원물의 건조-추출-제형이 단계별로 수행됐으나 아직 디지털 자산화되지 못하고 있다. 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에서는 자체 보유한 내부 데이터(small data)를 데이터 댐으로 옮기기 위해 미미하지만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러한 시도는 타산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에는 제조업으로 성장하다가 결국에는 데이터 정보서비스와 같은 흐름으로 산업이 성장하는 것과 같이, 바이오분야에서도 글로벌 시장의 경쟁 패러다임은 제조바이오에서 데이터 서비스 바이오로 전환될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전북 농업과 바이오산업의 데이터 댐이 구축되고 물길이 연결되면 원료의 생산에서부터 가공단계, 그리고 소비자 선택까지의 가치사슬이 형성되면 전북은 소비자 맞춤 서비스, 인공지능 소비자 식품 추천 서비스 등과 같은 미래 농생명바이오산업의 기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전북에는 콘텐츠를 핵심역량으로 하는 전주대학교와 농장과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농수산대학교 등과 같은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네트워크가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수천 년 동안 선조로부터 계승돼 온 농업의 지혜를 담아낼 수 있도록 데이터 구조를 설계하고 전공 학생들의 일자리와 연계하여 그 경험을 차곡차곡 모은다면 전북은 농생명바이오산업 분야의 빅데이터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큰물에 많은 생명이 모이듯이 데이터 댐에 모은 데이터는 빅데이터가 되고, 데이터끼리의 결함을 통해 고품질의 학습데이터를 만들 수 있으며, 이는 최종적으로 인공지능(AI)에 혈액을 공급하는 역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지금부터 노력해도 미국, 일본, 네덜란드 또는 중국보다도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다. 지금도 네덜란드 ‘프리바’사의 제어시스템을 쓰는 중·대규모 유리온실 대부분은 다국적 기업에 데이터를 무료로 건네주고 그 데이터를 분석한 컨설팅은 돈을 주고 사는 상황이라고 한탄한다. 이만큼 시장의 선점권을 내주고 있는 상황이므로 전북이 농업 빅데이터 분야 세계 1위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바이오공정의 빅데이터화라는 관점까지 확장하여 본다면 이 분야만큼은 세계 그 어떤 지역보다도 경쟁력 있게 만들 수는 있다. 즉 전북의 농생명바이오 데이터는 로컬 역량 결집 후 글로벌 확장 전략을 통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전라북도에는 4대 사고(史庫) 중 하나인 외사고가 있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은 그 치밀한 기록으로 인해 세계적인 문화재가 되었듯이 천년 후, 전북특별자치도에도 농생명바이오 데이터의 사고(史庫)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장한수<전북바이오융합산업진흥원 산업혁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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