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대피계획, 생명을 지키는 밑그림
우리집 대피계획, 생명을 지키는 밑그림
  • 이주상 고창소방서장
  • 승인 2023.11.2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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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상 고창소방서장

 “네모난 상자에 가장 소중한 것을 담아주세요” 이 질문에 무엇을 담을지 생각해 보자. 유년 시절 사진, 반짝이는 보석, 빛바랜 편지, 온기가 스며있는 배냇저고리 등 각자 생각하는 바에 따라 상자를 채울 것이다. 덮개를 닫고 밀봉한 다음, 이 소중한 물건을 다시 꺼내보자. 단, 덮개를 열어서는 안 된다. 소중함은 담기는 쉬워도 꺼내는 것은 어렵다.

  위 질문의 요지는 네모난 상자는 우리 집이며 상자에 담긴 소중한 것은 추억, 행복, 마음, 따뜻한 정이다. 덮개는 출입문이며, 밀봉된 덮개를 열지 못하는 것은 긴장감으로 인한 패닉상태를 표현한다. 안락하고 소중한 가정을 꾸미는데 차곡차곡 행복을 쌓아가는 데 열중하지만 일순간 무너지는 행복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상자에서 소중한 것을 온전하게 꺼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이에 소방청은 행정안전부, 한국소방안전원, 국립재난안전원 등 전문가 18명이 참여한 가운데 화재 피난안전대책 개선방안 TF팀을 구성하여 2019년~2021년 화재 빅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화재발생 현황 및 연소 확대 특성, 인명피해 행동별 특성과 물적 특성 등을 파악해 화재 상황 및 대피 여건에 따른 맞춤형 피난안전대책을 마련했다.

  첫째, 자기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대피가 가능한 경우다. 이때는 계단을 이용하여 낮은 자세로 지상층, 옥상 등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며 엘리베이터 사용을 자제하고 비상벨을 누르고 119에 신고한다.

  둘째, 자기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현관 입구 등으로 대피가 어려운 경우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평소 집안에 대피공간이나 경량칸막이 위치 등을 파악하고 설치된 곳으로 이동하여 대피한다. 만약 대피공간 등이 없는 경우 화염 또는 연기로부터 멀리 이동하여 문을 닫고 젖은 수건 등으로 틈새를 막은 후 구조 요청을 한다.

  셋째, 다른 곳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자기 집으로 화염 또는 연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다. 이러한 경우 무조건적인 대피보다는 세대 내에서 대기하며 화재 상황을 주시하며 연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을 닫은 후 119에 신고하고 안내방송에 따라 행동한다.

  넷째, 다른 곳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자기 집으로 화염 또는 연기가 들어오는 경우다. 복도, 계단에 화염 또는 연기가 없어 대피가 가능한 경우는 대피요령에 따라 행동하고 대피가 어려운 경우는 구조 요청 요령에 따라 행동한다.

  획일적인 대피는 인명피해 발생률 경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의 문턱으로 인도하는 격이다. 상자에 담긴 소중함이 각자 다르듯이 대피하는 방법도 집의 구조,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도화지를 꺼내 ‘우리 집 대피계획’ 밑그림을 그려보자. 소화기 위치, 비상시 대피공간 및 완강기 사용법, 경량칸막이 위치 및 적재된 물건 치우기, 약속된 대피장소 등 패닉이 오기 전에 미리 점검하고 약속하여 생명 수호를 실천하자.

  민들레 홑씨가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지더라도 약속 한 듯 한데 모여 새로운 봄을 맞이한다. 우리네 봄도 제아무리 위험한 역경이 있더라도 튼실한 대피계획으로 미리 대비하는 혜안을 가지자.
 

 이주상 <고창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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