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절망과 불편한 희망
익숙한 절망과 불편한 희망
  •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 승인 2023.11.2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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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 지든갤러리, 연석산우송미술관, 미술평론가

 1988년 11월, 전북도민일보는 창간호를 발행했다. 어느새 35년. 그 시절에는 발로 뛰면서 직접 대면해야 기사를 쓸 수 있던 때라, 문화부 기자들은 예술가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 당시 현장의 문화부 기자들이 수년 전에 은퇴했으니, 시간은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지나간 거다. 지금보다 좀 느렸지만, 인간적인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분명하다. 현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어두웠지만, 한 줄기 희미한 빛으로 행동했다.

 지금은 절망이 익숙하고 희망이 불편하다. 돈이 세상 모든 걸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나름대로 편한 비루함보다는 불편한 자유 쪽에 서기 위해 문화지능을 키워야 한다. 문화로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떠야만 생각의 주인으로 살 수 있을 거다. 그것을 위해 전북 문화판을 통찰해서 생각의 좌표를 제대로 설정해 주는 전북도민일보 문화부를 응원하고 기대한다. 오늘은 익숙한 절망과 불편한 희망을 유쾌하게 풀어낸 사진을 풀어보자.

 인간은 하늘 높이 날기를 욕망한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며 ‘자유롭다’라고 말하고, 그것을 동경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도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뜨거운 열에 밀랍이 녹으니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무 낮게 날아도 바다 습기로 날개가 무거워지니 항상 하늘과 바다 중간으로 날아라.”라는 그의 아버지 당부를 잊고, 태양으로 향하다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카로스 날개는 미지에 대한 동경이자 이상의 상징이다.

 사진가 곽풍영은 1998년부터 항공사진을, 2015년부터는 드론을 활용해 하늘 높이 날아서 피사체를 포착했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본 자연 풍광은 낯선 서정성과 파격적 조형성을 동시에 잡아냈다. 그도 이카로스처럼 하늘로 높이 달다가 ‘해 먹은’ 드론들을 돈으로 바꾸면 멋진 차 한 대쯤은 거뜬하게 살 수 있었을 거다. 그에게 드론은 날고 싶은 욕망을 해갈하는 이카로스 날개이자 하늘과 땅, 이상과 현실을 잇는 솟대인 거다.

 사진과 영상을 아우르는 그는 해외 출장을 자주 간다. 그때마다 그곳에서 사용했던 지폐와 동전의 디자인과 색상을 주목하게 된다. 복제를 막기 위한 정교한 인쇄, 박제된 위인들, 돌고 돌면서 생긴 상처들. 돈이란 재화를 대신하는 약속된 도구일 뿐이지만, 이승에서는 돈이 필요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은 아무리 천하고 고생스러워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다는 거고, 사는 건 누가 뭐래도 가벼운 주머니 속에서 돈 꺼내 쓰는 맛일 거다.

 그는 이번 개인전에서 돈놀이를 감행했다. 돈이 가진 현실 무게를 탈각시키고 유희로 다가선 거다. 암막 처리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동전과 지폐를 높이 던져 상승하거나 이내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 연출한 빛에 의해 잔상이 보이지만, 순간을 영원 속에 가둔 피사체는 그 자태가 명쾌하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위폐를 가르기 위해 지폐 속에 겹겹이 새겨 넣은 그림들을 끌어내려고 UV 조명과 마이크로 렌즈로 촬영해서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지폐의 속살을 제시한 거다.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게 돈이다. 악마 같은 돈, 갑돌이하고 갑순이도 서로 만나서 사랑하며 살다가 그놈의 돈 때문에 맑고 푸른 물에 풍덩 빠지지 않았던가.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은행가들이 만나면 예술을 말하고, 예술가들이 만나면 돈을 얘기한다.”라고 했다. 인생에서 각자가 부족한 부분에 눈길이 간다는 얘기일 거다. 사람의 95%는 돈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의 돈놀이는 분명 눈길을 끌 거다. 잠시라도 돈 무게를 내려놓고 곽풍영의 돈에 대한 단상과 유희, 사진 자체의 매력을 즐겨보자.

 문리 <지든갤러리, 연석산우송미술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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