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점 하나 찍으며 살자
긍정의 점 하나 찍으며 살자
  • 안도 문학평론가
  • 승인 2023.11.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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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문학 평론가
안도 문학 평론가

몇 년 전 친구가 단독주택에 살다가 관리하기 힘들다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사하고 며칠 안 되던 날 밤, 바람이 세게 불더니 벽에 붙어있던 <전주 00아파트>란 현판에서 ‘ㄴ’자가 떨어져 <저주 00아파트>가 되어버렸다.

친구는 갑자기 불행한 예감을 떨치지 못하고 다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우연일치겠지만 후에 시공회사의 부도로 하자 보수도 잘되지 않고 거래가 막혀 많은 손해를 감당했다.

로마 제국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우리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부정적인 것에 찍는 긍정의 점은 다른 곳이 아닌 나의 마음에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그 하나의 획은 바로 나의 것이다. 내 마음의 불가능한 것도 한순간에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이후에도 수많은 걸작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속에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망과 고난을 극복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바로 긍정의 힘이 있다. 그런데 이 힘은 바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예전에 ‘도로남’이라는 유행가를 들으면서 가사가 좀 유치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그 노래의 가사 ‘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가 삶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 가사처럼 점하나 차이로 정말 엄청난 뜻이 변한다.

점 하나 찍고 지우는 데 따라서 극과 극이 되는 것이다. 무심히 흘려버릴 수 있는 노래 가사에 머리를 끄덕인다. 젊어서는 유행가 가사가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 따라 사람의 마음도 변하는가 보다. 필자도 그 가사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떠올린 단어가 있다. ‘양심’과 ‘앙심’인데 ‘양심’이란 글자에서 점 하나를 지우면 ‘앙심’이 되고 ‘앙심’이란 글자에 점 하나를 더 찍으면 ‘양심’이란 말이 된다.

인생마저 괴롭히는 고질병(痼疾病)도 점 하나 찍으면 고칠병이 된다. 연약하고 작은 마음(心)에 굳건하고 당당한 신념의 막대기 하나만 꽂으면 무엇이든 반드시(必) 할 수 있다. 시도해 보지 않고 불가능하다(Impossible)는 영어 단어도 점 하나를 찍으면 나는 할 수 있다(I’m possible)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검게 짓누르는 ‘빚’에 점 하나를 찍으면 우리의 앞날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 된다. 자신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에서 ‘God is nowhere’라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던 사람이 ‘God is now here’라는 띄어쓰기만으로도 ‘하나님은 바로 여기에 계신다’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믿음로 바뀐다.

점하나 빼는 것, 점하나 찍는 것, 선하나 긋는 것이 글자 속에서 의미가 바뀌는 것처럼 우리 인생이 그렇게 쉽고 단순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자세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마음이란 마음대로 되지는 않지만, 부정적인 것에 찍는 긍정의 점은 다른 곳이 아닌 우리 마음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그 하나의 획(점)은 바로 우리 몫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마음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늘 깨어 살자.

“Dream is nowhere.”-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가 “Dream is now here.”-라는 띄어쓰기 하나로 ‘꿈은 바로 여기에 있다’로 바뀐다. 부정적인 것에 긍정의 점을 찍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 모두 ‘긍정의 점’을 찍으며 살자.

안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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