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 천호성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전북미래교육연구 소장
  • 승인 2023.11.14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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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성 전주교대 교수<br>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

11월 16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라 함)일’이다. 거리엔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시험일”은 가히 어느 국경일보다도 중요하게 취급된다. 왜냐하면 이 시험의 결과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학벌 중심 한국 사회에서 대학 간판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대학 입학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수능시험 결과이기 때문이다.

수능시험 날이면 수험생과 양육자만이 아니라 시민과 나라 전체가 함께 움직인다. 정부는 수험생들의 안전한 수송 대책을 마련하고 시험장 주변에 대해 엄격하게 소음을 통제하는데 심지어 비행기 출발 시간마저 조정하기도 한다. 공무원들의 출근 시간이 9시에서 10시로, 1시간 늦추어진다. 이 장면을 본 어느 외국인은 “얼마나 중요한 시험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느냐”며 이해하지 못할 표정을 짓는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우리는 시험 인생을 살고 있다. 각종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으로부터 직업을 결정하는데도 시험, 심지어 직장 내의 승진을 위한 시험까지 평생 시험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시험은 한정된 재화를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서열과 순위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공정한 기준으로서 심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험에 의한 평가가 경쟁 중심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험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고 승자에게는 한없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좌절과 굴욕을 안긴다. 시험으로 인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받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는 감히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상대평가로 줄을 세워 한우 등급 나누듯이 수험생을 9등급으로 나누는 수학능력 시험은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가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불평등지수가 가장 심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시험은 능력주의를 실현하는데 가장 강력한 도구로 활용된다. 수능은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시험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날, 같은 시간 배분으로 동일한 문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내면을 보면 다르다. 소위 강남으로 대표되는 특정 지역의 학생들과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의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연구 결과 부모의 경제력이 수능점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즉 수능시험은 차별화된 학교 교육과 더 좋은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에 있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수능시험이야말로 능력에 따른 평등으로 위장되고 포장된 가장 불공정한 시험 중의 하나인 셈이다.

객관식 중심으로 정답을 찾아내는 수능시험은 반복적으로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재수생을 양산하기도 한다. 올해 수능은 대통령 지시로 인한 킬러문항 배제와 앞으로 의대 입학정원의 확대가 기대되는 영향으로 1997년 수능 시행 이후 N수생의 비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N수생의 증가는 과도한 경쟁의 심화와 함께 국가적 국민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수능시험은 객관식이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해 채점이 이루어진다. 기계가 채점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정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정답을 찾아내는 교육이 창궐할 수밖에 없다. 한국 교육에 대해 붕어빵을 찍어내는 교육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중심의 수능시험은 시대의 수명을 다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미래 사회에는 창의력과 비판적인 사고력 등이 요구되는데 이를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 폐지가 안 된다면 적어도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공교육 중심의 교육, 특히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 수능의 영향력 제한이 필수요소이다. 또한 수능을 현재와 같이 등급이 있는 상대평가 방식이 아니라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꾸거나 혹은 논술형 시험이 추가되는 것으로 대폭 전환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학교 교육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입시 중심의 닫힌 교육을 넘어 학교 교육이 다양화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학교 간 서열화” 문제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천호성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전북미래교육연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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