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지나간 리버풀과 글래스고
스치듯 지나간 리버풀과 글래스고
  •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1.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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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수많은 사람 속에서 나 역시 한 자리를 차지해 사람·꽃·잔디를 바라보면서 한가로운 한때를 즐겼으며,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영국의 유명한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가 동경했던 ‘외딴섬의 낙원’(영국)과 같이, 모든 사람이 의식주에 만족하고 평화와 단란함 속에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벗이 되어주는 세계, 권력과 부가 허세를 부리지 않고 시기와 질투가 없는 평범한 세계, 현대적 시설 속에 살면서 원시적인 인간미가 고루 퍼져 있는 이 세계가 몹시 마음에 들었으며, 갈 길이 바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났다가는 다시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맨체스터에 너무 오래 머무른 탓에 영국 제2의 항구 도시 리버풀(Liverpool)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강과 바다가 보이는 항만에 내리고 보니 주위의 건물이 우중충한데 살벌한 바람까지 불어, 포근했던 맨체스터에서의 기분은 한가한 사람들의 단꿈만 같았다. 지도를 들고 여기저기를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았는데, 소란스러운 식당이며 사람들이 웅성대는 영화관, 떠들썩한 거리는 항구 도시의 면모를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조선업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최대의 도시 글래스고(Glasgow)로 가는 버스도 많지 않았지만, 먼 곳까지 가는 여행에 필수불가결한 2대 요소인 ‘돈’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출발 시간을 기다리기가 지루해 주위를 거닐면서 살펴보니 맥주 집에 건달들인지, 폭력배들인지 혹은 뱃사람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사나이들로 꽉 차 있는가 하면, 밤의 여인들이 컴컴한 건물 앞에서 사나이들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습은 항구 도시의 살벌한 밤 풍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발차 시간이 가까워지자 대합실로 들어가 가난하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마지막 버스를 안전하게 타기 위해 고통스러운 과정을 참고 견뎌야 했는데, 런던의 시원스러운 거리를 활보할 때와 너무도 달라 초라한 인생이 된 기분이었다.

 많은 손님들로 인한 소란이 멎은 뒤 버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로운 하늘 아래 차의 불빛이 비치는 도로 위만 훤할 뿐 온 세상은 캄캄했고, 곧이어 터덜대는 의자 위에서 피로에 지친 채 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새벽이 되어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버스는 안성맞춤으로 글래스고에 도착했는데 도시의 첫인상은 ‘유럽에서 가장 지저분한 도시’라는 별명과 같이 매우 누추했다.

 항시 바다에서 차고 거센 바람이 불기 때문인지 가옥들은 검고 거친 모습이었으며, 돌이 울퉁불퉁 깔려 있는 길은 불편하기만 했다. 하루 동안 흘린 땀과 차 속에서 밤을 난 탓에 피로하고 텁텁해진 기분을 씻어내기 위해 우선 손발을 씻고 무엇이라도 먹어야 했는데, 모든 음식점이 닫혀 있었다. 여러 궁리 끝에 대륙에서의 경험을 살려 전차를 타고 글래스고 역으로 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약간의 돈을 주면 샤워를 할 수 있는 깨끗한 욕실이 있었으며, 조금 더 돈을 내면 따끈한 차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유독 높은 숲속에 자리 잡은 ‘글래스고 대학’, 특별히 아늑한 기분을 안겨주는 시청 앞의 ‘존스퀘어’, 그리고 유명한 ‘교통수단 전시회’ 등을 보기 위해 분주히 찾아다녔는데 그중에서도 스코틀랜드의 긴 역사를 말해주는 ‘박물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람보다 몇 배가 큰 원시동물의 뼈가 끈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원시인들이 선사시대에 사용했다는 온갖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태고 시대 북구(北歐) 생활의 일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스코틀랜드의 여러 면모를 관찰하면서 오전 한때가 빨리 지나갔고, 점심식사 후에는 마지막 목적지이며 세계적인 축제가 열리는 에딘버러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이규하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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