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내려놓을 때 외로움이 말을 걸어온다
언어를 내려놓을 때 외로움이 말을 걸어온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3.11.12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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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남부로 이동하라고 경고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가자지구 북부를 떠나 어린아이와 노인들이 중심 잃은 두 팔을 들고 걸어서 피란하고 있는 뒷모습 사진을 보았다.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마치 내가 경험했던 피란길의 공포와 소리 없는 경련이 신문 네 귀퉁이를 말고 있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던 가을, 코스모스꽃도 무서워서 살랑바람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정읍에서 흥덕으로 피란을 가야 한다며 백일도 되지 않은 동생에게 밭은 젖을 물리며 피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들썩이던 어깨가 눈에 선하다. 어머니의 흐느끼는 눈물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른 눈물이 전쟁을 말해주고 있었다.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기억은 밤이면 산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다. 담요로 불빛을 가리고 숨죽이며 오들오들 떨면서 생명을 유지하려고 초점 잃은 아버지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끔 극한의 공포로 온 가족이 바들바들 떨고 있으면 아버지는 우당탕 마루 밑 구덩이 속으로 숨기도 하고 산속으로 숨어서 며칠씩 소식이 없기도 했다. 전쟁을 경험해서인지 지금도 소리 나는 압력 전기밥솥을 사용하지 못한다.

내가 누구이며 내 삶의 가치가 금 저울에 올려놓으면 어디쯤 기울어져 있는가를 알기 위해 시를 쓴다. 시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상대방으로부터 어떻게 인정받고 있는가가 궁금해서 시를 읽는다.

매일 거울을 보며 내가 나인가를 확인한다. 가을에 핀 꽃보다 예쁜 나의 모습을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할 때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울 때면 지구의 모퉁이로 점점 하루의 시간이 달려 가는듯해서 불안하다.

일과 삶의 균형에 신호등이 깜박이면 목숨 걸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나를 책임져준다는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 발버둥친다.

눈에 보이는 것과 가려진 것을 보기 위해 시인은 열심히 관찰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야 자연이 말을 걸어온다. 걸어온 말을 가슴에 품어야 시가 된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 그리트(1898?1967)는 벨기에 화가였다. 그는 달걀을 보면서 새를 연상하면서 그리며,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몽환적인 무의식에도 의미를 두는 예술인은 이미지의 배반자이지만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하는 기법이 있어 사물에 감추어진 인간 본성을 공감하는데 매력을 갖는다.

달아진 구두 뒷굽에 몸 기울기를 맞추면서 걸어가는 시간이 지구의 나이테가 새겨진 땅을 걷는다. 3억 6천만 년 전 석화암 융기를 걷는다. 고생대 생물들이 지구 반대편에 묻혀있어도 수평이 맞지 않은 구두의 균형을 잡으며 별의 시체를 만나러 우주를 떠도는 떠돌이별을 상상한다. 스스로 빛을 반짝이려고 궤도를 돈다. 그렇게 시인은 영원히 존재하는 별처럼 우주의 떠돌이별도 되고 싶은 삶을 만든다.

미국 시인, 소설가, 극작가, 아동문학가인 레이첼 리먼 필드(1894~1942)의 시로 외로움에 단풍이 곱게 스며들도록 가을바람으로 쓰다듬어 본다.

이상한 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몹시 피곤해진다는 것,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마음속 생각이 모두 움츠러들어/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것//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마음속 생각이 갑자기 화해져서/반딧불이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어떤 사람> 전문

전쟁이 멈추기를 기도한다. 힘센 자의 겸손과 으뜸이 낮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는 세상을 바란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즐기는 사람보다 외로운 사람의 찬 손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자비로운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 그립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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