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영과 함께 떠나는 생태 환경문학 기행(2) 황무지에 희망을 심어야 하는 이유
장창영과 함께 떠나는 생태 환경문학 기행(2) 황무지에 희망을 심어야 하는 이유
  • 장창영 시인
  • 승인 2023.11.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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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심은 사람』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살아온 한 여인을 알고 있다. 중국 사막을 숲으로 변화시킨 여자, 그녀 이름은 인위쩐이다.

 그녀가 시집간 곳은 하필 사막이었다. 그것도 황사의 진원지라는 중국 네이멍구 마오우쑤 사막 징베이탕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너무 보고파서 지나가는 사람 발자국을 대야로 씌워놓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사막에 나무를 심기로 한다.

 사막에 나무라니, 어찌 보면 터무니없을지도 모르는 그 돈키호테식 발상은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고된 일을 그녀는 20년 동안 묵묵히 해냈다.

 그녀가 그동안 심은 나무의 면적이 무려 1,400만 평이란다.

 사람이 그리울 때마다,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자신을 휘몰아칠 때마다 그녀는 절망하는 대신 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다시 또 사막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녀가 시집가기 전에도 그곳은 사막이었고 그 이전에도 사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사막에 나무를 심자 사막은 울창한 숲으로 변했다. 떠나갔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왔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녀가 심은 것은 나무였지만 그 결실은 생명의 회복과 자연의 풍성함으로 돌아왔다.

 『나무를 심은 사람』과 『사막에 숲이 있다』, 이 두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그 수많은 나무를 심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사막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렇게 묵묵히 황무지에 자신만의 나무를 심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환경운동가라고 부르기도 하고 생태학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슬 같은 글을 새기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삭막한 세상에 홀연히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노래 한 소절을 슬쩍 떨어뜨리고 가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가겠지만 사랑에 목마른 이들에게 글 한 줄, 그림 한 점, 음악 한 소절은 생명의 단비와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 그걸 무심히 흘려보내는 이도 있다 내 삶으로 끌어와서 변화시키는 이도 있다.

 맨 처음 황무지에 나무를 심은 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미래를 그렸는지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작은 행위들이 황무지를 비옥한 옥토로 바꾸고 척박한 땅을 울창한 숲으로 변화시켰으니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기적이 아닌가.

 우리는 그 사소한 기적들을 매일 온몸으로 경험한다. 어떤 이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비웃음을 던지며 매몰차게 외면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들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먼 훗날 왜 그때 하지 않았느냐고, 그때 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가 만나는 오늘은 어제 누군가가 간절히 꿈꾸던 내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장창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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