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달아 외치는 예스맨이여,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기억하라
덩달아 외치는 예스맨이여,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기억하라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 승인 2023.11.01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br>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말은 1963년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라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처음 제시하였다. 이 말을 쉽게 풀이하면,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여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조금 더 확대하면, 아이히만이 그랬듯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조직에 순응하며 자신들이 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필자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사건이나 재난사고 등을 보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듣게 되는 해명은 하나같이 진부하여 대중을 설득하기에 너무 부족함이 많았다. 국회의 국정감사장, 패널들의 토론 등에서 논의되는 의혹 사건을 듣고 있노라면 ‘영혼 없는 자들’의 건조한 메너리즘에 화가 난다.

모두가 궁색하게 변명하면서 그 순간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깊이 있는 성찰이 전제되지 않은 이해나 깨달음은 의미가 없다. 다른 사람은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그리고 그들의 삶에 드러난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서 진실에 접근해 가고 있는데, 혼자만 자신만의 철옹성을 쌓고 안주하는 일이 허다하다. 양평 고속도로의 진실이 그렇고, 채상병 순국과 그 대응 방법이 그렇다.

1962년 5월 31일 이스라엘에서 교수형을 당한 유대인 학살자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1906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났고 네 살 때 어머니가 죽었다. 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이주하여 유대인 거주지역 게토(Ghetto) 근처에서 유대인과 친밀하게 지냈다. 1925년 오스트리아 대공황 시절에 한 전단을 통해 나치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1931년에는 나치에 가입하였다. 유독 검은 그의 눈동자 때문에 어려서부터 유대인과 닮았다는 놀림을 받았던 아이히만, 한때 게토에서 유대인과 친하게 지낸 전력 탓에 유대인 스파이라고 의심받기도 했다. 결국에는 스스로 유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 유대인에 잔혹했던 아이히만이다.

1933년부터 게슈타포의 장관 하이드리히의 인정을 받은 그는 독일 점령 지역에서 유대인 학살 업무를 맡았다. 그 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를 사용하여 유대인 집단학살에 가담하면서도 아무 죄의식을 갖지 않았다. 그리하여 1944년에는 그 스스로 “내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나는 만족하고 무덤으로 들어갈 것이다. 500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였다. 그의 만행은 어찌 다 형용할 수 있을까.

독일이 패망하자 아이히만은 독일 공군 이등병으로 변장한 채 미군에게 체포당한다. 미군이 한갓 말단 공군 이등병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 틈을 이용해서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나치 친위부대의 그 악명 높았던 아이히만을 찾는 데 혈안이 된다. 수사망이 점점 좁혀오는 것을 직감하는 그는 1950년 자신의 이름을 ‘리카르도 클라멘트’고 바꾸고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망명한다. 그곳에서 무려 15년 이상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아이히만은 누구도 자기를 찾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엉뚱한 곳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1957년 그의 큰아들이 유대계 여자 친구 앞에서 유럽에서의 자기 아버지 행적을 언급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 않은 유대계 여자 친구는 정보기관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었고, 마침내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 대원 7명에 의해 집 앞에서 체포되었다. 아이히만은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 후 기소되어 그는 재판받았고, 1962년 5월 31일에 교수형에 처했다.

한나 아렌트는 젊고 어린 시절, 유대인과 잘 어울렸던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에 대하여 끝없는 의문을 가지면서 바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공개재판에서 그는 한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기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시한 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아이히만의 경우에서 보듯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을 한다면 언제라도 이런 악행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어쩌면 모두 이와 같은지도 모르겠다. 상부의 지시나 방침이 잘못되었는데도 ‘덩달아 외치는 예스맨’이 부쩍 늘어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불합리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자칫하면 악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