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먼저 보낸 엄마의 슬픔, 무한한 모정 담은 창극 ‘우리 어매’
아이를 먼저 보낸 엄마의 슬픔, 무한한 모정 담은 창극 ‘우리 어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3.10.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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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사회적 재난으로 방향 잃은 현대사회를 위로

 사랑하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닥뜨린 엄마는 자신의 손을 잃고, 찢어진 심장을 내어주고, 두 눈이 멀어야만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자신의 전부를 잃어 살아도 죽은 목숨이라 죽은 아이의 냄새만이라도 한 번 맡아보면 되었는데, 야속하게도 생생했던 기억마저 너른 서천서역국 꽃밭에서는 통하질 않는다. 이미 다른 꽃이 되어버린 아이를 찾을 수 없어 망연자실한 채 쓰러진 엄마의 울부짖음이 너무도 가여워 당장 뛰어가 안아주고만 싶었다.

 31일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예술감독 조영자)가 공개한 제56회 정기공연 창극 ‘우리 어매(작·연출 남인우)’ 시연회에서 동이엄마 역으로 분한 장문희 수석단원의 처연한 소리는 짙은 인상을 남기며 장내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반대로 ‘너도 나의 꽃밭에서 수줍게 피던 꽃’이라며 동이엄마를 현세로 돌려보낸 삼신할매 역의 김세미 지도위원의 목소리는 포근했다. 두 명창의 케미는 창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판소리의 극적 특징이 무엇인지 여실히 느끼게 줄 중요한 장면으로 충분해 보였다.

제56회 정기공연 창극 ‘우리 어매(작·연출 남인우)’ 시연회

 창극 ‘우리 어매’는 사랑하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견디어내는 엄마의 지옥 같은 시간을 신화적 판타지를 통해 은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동서고금을 초월하는 엄마의 무모한 모정을 담아낸 이 작품은 최근 각종 사회적 재난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주는 고통을 견디어 내고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임이 분명했다.

 남인우 연출가도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주는 고통은 한국 전통 재담 소리인 ‘배뱅이굿’과 부모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무속 신화 ‘바리데기’, 죽은 자녀를 찾아 죽음의 신을 찾아가는 덴마크의 안데르센 동화 ‘어머니 이야기’ 등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다양한 이야기로 존재해왔다”고 “창극은 과거형의 공연 형식이 아닌 현재진형형의 공연 장르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이번 작품은 창극의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서사와 미학적 방식을 나타내고자 했다. 한국의 전통 설화에 창작을 가미한 새로운 각도에서 모정을 비춰내는 방식이다. 삼신할매가 나오는 서천꽃밭에서의 기다란 천들은 살풀이춤의 흰 수건처럼 이별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등 미장센을 나타내는 무대 요소가 곳곳에 나타나 감동을 배가시킨다. 등장인물들은 고정적인 등장에서 벗어나 무대 전체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 객석의 시선을 시종일관 붙잡는다.

제56회 정기공연 창극 ‘우리 어매(작·연출 남인우)’ 시연회

 음악적인 측면도 다양한 변화가 느껴진다. 작·편곡과 지휘를 맡은 이용탁 관현악단 예술감독은 “남녀의 key(청)를 한 키로 통일해 공연했던 패턴과 달리 키를 구분해 창자들이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도록 했다”고 밝혔고, 작창에 참여한 김영자 명창은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최대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면에 맞는 장단과 음율을 조화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조영자 예술감독은 “문명의 발달과 시대에 따라 효(孝)의 개념은 과거와는 달리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은 어머니는 항상 고마움과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점이다”라며 “여운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베푼 헌신과 사랑을 잊지 않고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공연은 11월 10일 오후 7시 30분과 11일 오후 4시에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도민을 위한 무료 공연으로 선보여진다. 티켓 예매는 3일 오후 1시부터 전라북도립국악원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며, 남는 좌석은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받을 수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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