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2> 차의 길 55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2> 차의 길 55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3.10.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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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하동의 차밭

차 맛이 깊어 마시기 가장 좋은 시기가 왔다.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볼 겨를이 없어진 지 오래고 머릿속은 온갖 일이 가득하여 계절을 챙기기도 어려운 요즘이다. 하지만 이맘때쯤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곳에 앉아 차를 꺼내 마시니 그 맛과 향이 마음속 깊이 스미고 눈을 시원하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한다. 어떤 차가 좋을까.

지금은 차 시장이 발달하여 원하는 차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다. 반면 좋은 차의 기준을 가늠하기 조금은 어렵다. 평소 즐기던 차가 있다면 마시는 이에게는 가장 좋은 차일 듯싶다.

얼마 전 가을이라 차 만드는 일이 끝난 하동 차 산지를 다녀왔다. 조금 한가해진 차밭을 보고 싶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차밭과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 차밭을 뒤로하고 차 밭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맞이한 그들의 검게 탄 얼굴엔 윤기가 흐르고 아름다운 웃음이 가득하였다. 봄날에 열심히 차를 수확한 기쁨인가. 열악한 한국 차시장과는 조금은 괴리감이 있는 얼굴에서 차의 여유를 보았다.

또한 현지 연구소와 MOU를 체결하였다. 봄부터 이야기가 있었지만 조금 한가해진 10월 초에 협약식을 한 것이다. 차 연구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하동 녹차연구소 연구진을 만나 대화하며 그들의 노력과 성과를 느끼고 볼 수 있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차의 생산과 유통 등 여러 분야에서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차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차 산지인 하동의 녹차 연구소와 차(茶) 문화와 예(禮)를 연구하는 원광대 대학원 예다학과(禮茶學科)와의 협력관계 구축은 차 문화 발전을 위한 또 다른 시작이 아닐까.

차는 실용적인 것으로 다양한 연구와 개발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용만을 쫓다 보면 단순 음료로 흐를 수 있어 차별화에 어려움이 크다. 언제부터인가 다양하고 강렬한 중국과 일본, 심지어는 영국의 차 문화에 밀려 한국 차의 기준마저 흔들리고 있다.

왜 한국 차 산업은 오랫동안 늪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활성화에 어려움이 있는가. 우리의 차 생산 농가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한국에서 생산된 차 가격이 높아 가격이 조절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차 개발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많은 과제 속에 한국 차의 대중화라는 화두를 안고 늘 고민한다. 차를 마시는 이들의 입맛은 어떤 맛과 향기에 익숙해져 있을까. 미각과 후각은 새로운 것보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찾는다고 하니 그간 중국과 일본 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입맛 탓을 해봄직도 하다.

한국 차는 자연스러운 맛을 추구하니, 선인들은 차를 마시며 시를 읊고 마음으로 교유했으며 그들의 이상세계를 꿈꾸었다. 자연스런 맛과 멋, 순수성이 우리 차의 DNA라면 이러한 정서를 이어가고 차의 대중화 및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은 김시습(1435~1493)의 잠을 탐해서(耽睡)라는 시이다.
 

  진종일 누워서 잠을 탐하노니
  게을러서 문 밖에도 안 나갔네,
  책은 책상위에 던져 버려
  권으로 질로 흩어져 있네,
  질화로엔 향 연기만 일어나고
  돌솥에는 다유(茶乳)가 끓는데,
  알지 못했구나! 해당화 꽃이
  일천 산에 내린 비에 다 떨어진 줄을.
 

진종일 잠을 탐하는 것도 부족해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책들과 어우러진 질화로엔 향 연기가 일어나고 돌솥에 차가 끓는 그림 같은 시이다. 김시습이 아닌 누구라도 이런 그림을 그려봤을 터이다. 가을이 가기 전에 따뜻한 차로 속내를 물리고 마음을 적셔 보면 좋을 듯하다.
 

 글=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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