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68) 신동엽 시인의 ‘너는 모르리라’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68) 신동엽 시인의 ‘너는 모르리라’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3.10.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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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모르리라’
 

 - 신동엽 시인
 

 너는 모르리라
 그날 내 왜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가(古家) 앞
 서 있었던가를
 너는 모르리라
 진달래 피면 내 영혼 속에
 미치는 두 마리
 짐승의 울음
 너는 모르리라
 산을 열 굽이 넘고도
 소경처럼 너만을 구심하는
 해와 동굴과 내 사랑
 너는 모르리라
 문명(文明)된 하늘 아래 손 넣고 광화문 뒷거리 걸으며
 내 왜 역사 없다
 벌레 삥…니까렸는가를
 하여
 넌 무덤 속 가서도 모를 것이다
 너 안 보는 자리서
 찬 돌 쓸어 안으며
 그 숱한 날 얼마나 통곡했는가
 그리하여
 넌 할미꽃 밑에서도 모를 것이다
 그날 왜 내
 눈물먹은 네 진주에 손대지
 안 했는가를.
 그리고 그것은 몰라야 쓴다
 

 <해설>

 이 시는 일제 치하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준 집은 이미 일제의 것이니 “그날 내 왜/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가(古家) 앞/ 서 있었던가를 너는 모르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진달래 피면 내 영혼 속에/ 미치는 두 마리/ 짐승의 울음”이 들릴 수밖에요. 시에서 말하는 두 마리의 뜻은 저항해야 할 ‘나’와 저항하지 못하는 무력한 ‘나’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강산이라도 “산을 열 굽이 넘고도/ 소경처럼 너만을 구심하는/ 해와 동굴과 내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면서 ‘미개한 조선의 개화(開化)’를 앞세웠습니다. 우리 조상은 일제의 오욕(汚辱)으로 ”그 숱한 날을 통곡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상이 ”그것은 몰라야 쓴다“라고 했지만, 정작 모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기에 일본을 경계하면서 살아가는 까닭이겠지요.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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