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98> 선산 팔아먹은 후손 잘 되는 일 없다(1)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98> 선산 팔아먹은 후손 잘 되는 일 없다(1)
  • 김두규 우석대 교수(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 승인 2023.10.26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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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

‘선산 팔아먹은 놈치고 잘되는 것 못 봤다!’ 선산 관련 풍수 격언이다. 몇 가지 경험담을 소개하고자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산이란 무엇이며, 그 역사적 변천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수도를 충청도로 이전하고자 하였다. 이른바 ‘신행정수도이전’ 프로젝트였다. 추진단장은 훗날 세종시 시장이 된 이춘희 단장이었다. 필자는 70여 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에 위촉되었다. 이춘희 단장의 고향이 고창이어서 사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신행정수도이전’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좌절되고, ‘행정중심복합도시’ 형태로 지금의 세종시가 만들어졌다. 충남 연기군 금남면 일대로서 가운데 금강이 흐르고 뒤로는 원수산이 장막을 치는 배산임수의 땅이었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 남향이라 많은 무덤들이 산재하였다. 당시 추진단 지표조사에 따르면 2만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다. 무연고 무덤과 봉분이 없어졌으나 무덤이 분명한 것까지 포함하면 3만기가 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신행정수도후보지’가 결정되면서 그곳에 살던 ‘산 사람’들과 주민과 무덤 속의 ‘죽은 사람’들 모두 고향을 떠나야 했다.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았다. 특히 조상 무덤을 이장해야 한다는 것에 격렬히 반대하였다.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필자도 공청회에 자문위원 자격으로 배석하여 의견을 청취하고 질문에 답변드렸다. 공청회에는 그곳 주민들보다는 문중을 대표하는 후손들이 많았다. 문중을 대표하려다 보니 지식이 풍부하거나 ‘말빨’이 센 후손들로서 주로 교수들이 많았다. 명함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후손들의 항의는 격렬하였다.

“조상님 유택을 내 손으로 없애는 불효를 차마 못하겠다.” “보상받은 돈으로 새로 묏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이보다 좋은 자리를 어디서 구하겠느냐?” “조상 묘 잘 못 건들어 후손에게 일이 생기면 어쩔거냐?” “우리보고 선산 팔아먹은 놈 되란 말이냐?” (...)

여러 대안이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종시가 관리하는 ‘은하수공원’ 묘원이 만들어졌다. 전국에서도 가장 좋은 입지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필자가 입지선정에 관여하였기에 구체적 내용을 잘 알고 있다. 그때 “선산 팔아먹는 놈치고 잘되는 놈 없다! 나보고 그 선산 팔아먹는 놈이 되란 말이냐?”고 항의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두 번째 사례이다. 3년 전, 중앙의 모든 일간지에 “000 사장 별세”라는 부고가 고인의 사진과 함께 박스로 소개된 적이 있었다. 대기업 ‘창업 공신’이었다. 며칠 후 필자가 연재하는 신문사를 통해 연락이 왔다. 후손이 필자와 한번 만났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대화 내용이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어 경기도 용인 사설공원묘원에 모셨습니다. 안장하려고 광중을 파는데 물이 나왔습니다. 또 장례식장에서 소개해준 지관이란 사람이 하관 중에 공개적으로 자리가 나쁘다고 해서 불쾌하기도 하고, 마음도 편치 않아서 자문을 구하려 합니다.”

“매장입니까?

“예!”

“사설공원묘원에 매장은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수억원), 선산이 없습니까?

“당연, 있지요. 고향에 아버님 생가가 지금도 잘 보전되어 있고, 생가 뒤에 수만 평 선영이 있습니다. 윗대 조상님들뿐만 아니라 아버님 형제들 가묘까지 만들어놓았지요. 그런데 장손이 선산 일부를 팔아먹었어요. 아버님께서 팔린 선산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 아파하시더니 끝내는 선산에 가시기를 포기하셨어요.”

그 선산 팔아먹은 후손 잘 되었을까?(계속)

 

글 = 김두규 우석대 교수(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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