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 이번에는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의대정원 확대, 이번에는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3.10.2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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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정부가 2006년 이후 3,058명에 머물러 있는 의대 정원을 오는 2025학년도부터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국민들은 필수의료 인력 증원을 원하지만, 의료계에서는 근본적 해결 없이 단순 숫자만 늘리면 결국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와 같은 건강보험으로부터 자유로운 비급여 진료를 위주로 하는 의사들만 늘 것이란 주장이다. 다만 의료계 안에서도 필수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만큼 현 정권이 어떤 식으로 의료계의 반대를 넘어설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앞서 2020년 문재인 전 정부 당시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의사단체 등이 총파업으로 강경하게 나오며 무산됐다. 그러나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여야를 떠나 정치권과 보건당국에서 매번 지적돼왔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19일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라며 “임상 의사뿐 아니라 관련 의과학 분야를 키우기 위한 의료인도 양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확대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원 확대가 결정되면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정부와 의료계 간 충돌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2.4명으로 OECD 평균 3.5명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또한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37명인데 반해 경북은 1.4명, 충남은 1.5명에 불과한 등 지역의 의사 수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주요 수련병원에서 필수 의료과목으로 꼽히는 흉부외과(47.8%), 소아청소년과(28.1%), 외과(76.1%), 산부인과(80.4%) 등은 최근 5년간 전공의 정원을 모두 채우지 못하는 등 소위 필수의료과 기피 현상이 두드려져 전공 간 인력의 불균형도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사의 절대 수뿐만 아니라, 지역 간, 전공 간 의료 인력의 부족이 심각하여 의사 인력을 늘리기 위한 의대 정원의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필수의료가 붕괴하여 가는 구조적인 원인을 개선하지 않고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리는 이른 바 ‘낙수효과’를 통해 소위 인기과 의사가 넘치면 자연히 필수의료과로 넘어가는 의사가 나올 것이라는 해결책은 오히려 의료시스템의 모순을 악화시키는 악수일 뿐이라는 것이 의료계와 반대하는 진영의 주장이다. 이런 무조건적인 의사 수 늘리기는 불필요한 의료수요를 폭발시켜 취약한 건강보험재정을 고갈시키고 국민 의료비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며, 또한 과학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더욱 악화시켜 출산율 감소와 함께 그렇지 않아도 붕괴하여 가는 과학기술 분야를 더욱 위축시켜 산업기반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간과할 수 없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대정원을 늘리기 전에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들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첫째 그 무엇보다 필수 의료분야의 낮은 수가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수가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볼 때 48%, OECD 국가의 평균에 72% 정도로 매우 적다. 단적인 예로 2017년 기준 자연분만 수가는 미국이 1만 1,200달러이고 한국은 1,040달러에 불과하다. 이런 여건에서 환자를 볼수록 손해를 보는 필수의료 분야에 오직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의사가 몇 명이나 될 것인가이다. 그동안 이런 낮은 수가를 의사들은 질보다 양으로 버티고 비급여 진료로 벌충하면서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인구가 줄면서 양으로 때우는 방식도 한계에 도달하고, 높아진 국민의 권리의식과 의료서비스의 요구도에 따라 MRI, 초음파 같은 비급여 검사가 급여화되면서 더 이상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워져 필수 의료분야는 이미 적자에 빠지게 되었고 의사들이 이탈하면서 결국 소아과, 산부인과처럼 필수의료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둘째는 필수 의료분야의 의료사고나 분쟁으로 인한 민·형사상의 부담이 크다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악의,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선의에 의한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법정 구속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책임보험, 조정·중재, 합의, 형사처벌 특례조항 등 비형사적 구제 방법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중환자나 응급의료 분야 대신 미용·피부과처럼 생명을 다루지 않는, 소송 위험이 적은 분야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일부 문제에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면한 문제에 대한 더 긴급한 해결이 필요한 상황에서 결국 ‘얼마나’보다 ‘어떻게’ 늘리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증원 목적은 인력이 계속 이탈하고 있는 필수의료와 지방병원 의사를 충원하는 것인데 그냥 숫자만 늘려선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필수 의료분야의 적자 수가구조를 개선하고 기피하는 학과에 대한 근무여건과 지원·보상이 많아져야 필수의료의 인력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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