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55> 국회가 술을 망친다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55> 국회가 술을 망친다
  • 이강희 작가
  • 승인 2023.10.22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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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이야기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이야기

증류주의 주세(酒稅)를 종량(量)세로 하겠단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독자들은 알지 못할 거 같아 필자가 나섰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부 시절 가정에서 만들어 마시던 술은 핍박받았다. 일제는 조선을 통치하는 돈을 걷으려고 주세로 술을 통제했고 군사정부는 쌀소비를 줄이려고 술을 통제했다. 그 영향으로 강점기에는 일본인 주도로 술 회사가 만들어졌고 군사정부 시절은 일도일사(一道一社)와 같은 정책으로 제조사를 통폐합해 선택받은 기업만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렇게 술맛의 다양성은 단조로워졌다. 소비자는 대기업의 술만 강요당했다.

단절되어가다시피 하던 술에 희망이 보였던 것은 법과 제도가 개선되면서부터였다. 1993년 농산물의 소비 촉진과 농가 소득향상을 위해 ‘지역특산주’제도를 도입했다. 2002년 즈음 월드컵을 앞두고 주세법 개정으로 도심에서도 소규모 주조장에서 만든 비어와 음식을 맛보는 게 가능해졌다.

그러나 당시 주세법에서는 종가세(출고가격에 붙이는 세금)를 부여했기 때문에 세금이 높았고 외부 유통은 할 수 없어 활성화가 어려웠다. 이런 제약을 없앤 것이 2014년이다. 제조시설 기준 완화와 비어를 외부에도 유통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과세표준을 낮춰 제조자 부담을 줄였다. 2016년부터 제조시설을 갖추면 도심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팔 수도 있게 됐다.

2017년에는 전통주를 통신판매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됐다. 2020년에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술에 적용했던 종가세를 깨고 비어와 막걸리처럼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에 종량세를 적용했다. 이는 술을 만드는 재료의 고급화로 이어졌다. 낮은 알코올 도수의 술을 만들 때 기존 종가세의 경우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다 보니 술을 만드는 재료가 고급일수록 출고가격이 높아져 높은 세금을 감내했지만 알코올 도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로 바뀌면 전통주와 비어는 세금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중소규모인 전통주와 소규모 비어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기존 대기업과 가격경쟁보다 고급스러운 재료 사용으로 차별화했기에 이런 정책변화는 중소 주류제조업체와 전통주시장, 농산물 소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주류산업 특성상 설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대기업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가만히 놔둬도 기울어지는 운동장이었기에 중소업체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법과 제도, 정책이 움직여서 나름의 균형을 가져왔다. 이런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비어는 수입 비어와 역차별을 줄였고 전통주는 주종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이루며 고용 창출까지 가져올 정도로 성장했다.

대기업 위주였던 주류시장에 중소업체가 활발히 움직이자 제품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선택의 폭이 늘었고 시장의 주도권은 소비자가 쥐었다. 법과 제도, 정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몰아주기로 소수의 담합을 만들 수도 있고 나눠주기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최근 민주당을 주축으로 ‘주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5105)’이 발의되었다. 중소 주류제조업체에 정책적 지원이라는 껍데기를 쓰고서 겨우 이룬 비스듬한 균형마저 깨려는 시도다. 대형자본의 입맛에 맞게 법을 개정하고 시행하면 조세는 줄게 되고 남는 잉여금은 공격적인 마케팅에 사용될 거다. 그럴수록 감소할 지역특산주 소비는 지역 농산물의 소비감소로 이어져 중소업체의 숨통을 조여들 거다. 특정 업체를 위해 다수 업체를 희생시키는 게 자본주의다 보니 법률안제출은 절차일 뿐 이미 특정 업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글 = 이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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