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67) 문병란 시인의 ‘직녀에게’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67) 문병란 시인의 ‘직녀에게’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3.10.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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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녀에게’
 

 - 문병란 시인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멀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벼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남은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해설>

 문병란 시인은 서정적인 세계를 모색하다가 부조리한 현실사회에 저항하는 참여시 경향으로 초점을 맞춰 시를 쓴 시인입니다. 이 시는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듯 보이지만, 1980, 90년대 시기에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로 널리 애송되었습니다. 이 시에서 “우리가 만나는 그날”은 민중이 바라는 세상입니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멀다”라고 하여, 민주화에 앞장섰다가 먼저 떠난 민주열사에의 애절한 그리움을 담았습니다. 시대가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간이어서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라고, 민주화에의 열망과 민주열사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담았습니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우리는 만나야 한다. 마침내 대상을 향해 직설로 호소합니다. 민중의 열망을 가로막은 이별은 오랜 세월 이어져 왔으며, 그리움이 가슴 아프도록 처절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다가옵니다. 우리가 열망했던 세상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우리는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새 세상을 향해 길을 가야 합니다.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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