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정읍사 망부석, ‘북면(北面) 월붕산(月朋山)’에 있었다
사료로 본 정읍사 망부석, ‘북면(北面) 월붕산(月朋山)’에 있었다
  • 김재영 사)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23.10.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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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사)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정읍사 망부석의 위치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정읍현 고적 조에 “현북십리”에 있다(在縣北十里)는 기록이 유일하다.

기록된 것은 다섯 글자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망부석이 위치해야 할 거리와 방위(방향), 행정구역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망부석의 위치 규명을 위해서는 모든 조건이 여기에 수렴되어야 한다. 다른 논란이 있을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바탕으로 첫째, 정읍현청(관아)이 어디에 있었는가.

둘째, 북쪽 10리 지점이 지금의 어느 곳인가.

셋째, 조선시대의 10리가 과연 지금의 10리인 4㎞와 같은 것인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시대변화에 따라 도량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미터법’을 공포한 것은 1902년으로 일본에서 1리가 392m인 것을 그대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각론으로 들어가 첫째 조건인 정읍현청은 현 장명동사무소 일대에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모든 지명이 당시 현청이 있었던 장명동사무소 일대를 중심으로 거리표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북쪽을 가리키는 방위문제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방위는 사방위를 포함한 팔방위(八方位)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서문에서는 조선의 영토를 설명하면서 서남, 동남, 동북, 정동, 정서 등의 방위를 언급하였다.

따라서 북쪽의 북면과 북서쪽은 명백하게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쪽을 북동과 북서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리 측정에 관한 문제이다.

조선시대 거리 측정에 사용된 척도는 주척(周尺)이었다.

주척 1척은 약 20.6㎝에 해당된다.

6척이 1보가 되고, 360보가 1리가 된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규정되어 있다.

이를 현대적인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0리는 4km가 아닌 4.5㎞가 된다.

따라서 정읍사 망부석은 정읍현청이 있었던 장명동사무소 일대에서 북쪽으로 10리, 약 4.5km 떨어진 지점을 그 위치로 비정할 수 있다.

그 지점은 정읍현청이 있었던 현 장명동 일대에서 잔다리목과 수성동을 거쳐 북면으로 가는 길이거나 동초등학교 옆쪽의 말고개를 넘어 북면 월붕산(일명 ‘월명산)으로 가는 소로길 중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모든 조건을 따진다면 정읍사 망부석은 북면 승부리 ‘월붕산’에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추정을 가능케 하는 사료가 바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정읍현 지도」(1896)다.

망부석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월붕산 아랫마을인 금곡(錦谷, 원 이름은 점촌. 맞은 편이 승부마을)앞 도로가 서울로 가는 큰 길이라는 뜻의 ‘경대로(京大路)’라는 점과 정읍현청에서 북쪽으로 10리(北十里)’ 떨어져 있다는 것을 명확히 표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 뒤를 이어서 나온 1936년 『정읍군지』와 1959년에 나온 『고장생활』 정읍편의 “망부석은 북면과 정우면으로 가는 일등도로(변)에 있으며, 옛날부터 남북으로 통하는 대로(大路)였다.”는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여기서 일등도로는 서울로 가는 국도 1호선이며, 그 길이 바로 북쪽을 의미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정읍현지도' (규10770, 1896)<br>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정읍현지도' (규10770, 1896)

북쪽은 임금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중요시 한 것이다.

현재도 말고개를 넘어 북면 승부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정읍북로(井邑北路)’이며, 정읍의 남과 북을 이어주는 도로가 바로 ‘관통도로’이다.

이와 같이 북면 ‘월붕산(月朋山, 103.5m)’은 지명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현 정읍시 장명동사무소 일대로부터 방위와 거리, 행정구역이 모두 완벽하게 일치하는 곳이다.

이제 사료로 입증이 된 만큼 북면 월붕산에 ‘망부석 공원’을 조성하고, 정읍사 공원에 있는 망부상을 옮기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월붕산은 더 친근한 우리말인 ‘달벗산’으로 고치고, 일대에 ‘달맞이꽃’ 심기를 제안한다.

그렇게 된다면 현 정읍사공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민을 위한 휴식처로 개방하거나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면 될 것이다.

김재영 <사단법인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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