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수 시인과 함께 읽는 책 놀이터 22 - 나는 달팽이 / 오미경/ 초록달팽이
김헌수 시인과 함께 읽는 책 놀이터 22 - 나는 달팽이 / 오미경/ 초록달팽이
  • 김헌수 시인
  • 승인 2023.10.1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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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달팽이 / 오미경/ 초록달팽이
 

  동시를 쓰는 글감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다. 징그러워 보기도 싫고, 냄새도 맡기 싫고, 곁에 두기도 싫은 사물들이 사랑스런 존재로 들어와 있을 때가 많다. 지렁이, 뱀, 똥, 달팽이, 개구리, 자벌레, 쥐며느리, 애벌레와 다양한 곤충과 동물이 눈에 띈다. 그 중에 아이들이 선호하는 사물 중에 하나가 달팽이다. 달팽이는 배를 발로 사용하는 복족류를 일컫는다. 패각을 가지고 있는 달팽이와 패각이 퇴화하여 외투막이 몸 전체를 덮고 있는 민달팽이가 있다. 나선형의 껍데기가 있고 두 개의 더듬이가 있다. 달팽이는 느릿느릿하지만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눈이 나쁘지만 냄새도 잘 맡고 피부로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들은 달팽이 등에 있는 집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엄마가 반지를 넣어두는 보석함, 시골 외갓집, 오빠가 매고 다니는 백팩, 나무의 밑둥처럼 달팽이의 나이테가 새겨진 그루터기,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르골, 택배상자, 캠핑장에서 들어가서 잤던 침낭, 크루아상 한 덩어리, 인디언텐트와 같다고 말한다. 달팽이의 집을 상상하는 아이들의 생각이 여러 갈래로 뻗어있었다. 무언가 힘이 들거나, 엄마한테 꾸중을 들었을 때, 낮잠을 자고 싶을 때, 나 혼자만의 장소가 필요할 때 웅크리고 들어가기 좋은 집, 그런 집이 있어서 달팽이는 좋겠다고 말한다.

 긴 겨울을 끝낸 숲에 봄이 왔다.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달팽이가 여행을 떠나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개구리와 호랑거미, 박각시나방과 왕개미, 고추잠자리와 지렁이를 만난다.
 

  “넌 느리고, 눈도 나쁘고, 욕심도 없구나.”

  “맞아. 그래도 난 내가 참 좋아!”
 

  달팽이의 모습과 행동을 자기들과 비교하며 비웃기도 하지만 달팽이는 화도 내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나는 너희들과 달라, 그렇지만 내가 틀린 것은 아니야!”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인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일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동작이 빠른 개구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을 보고, 민들레꽃을 보는 눈과 이끼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도 한다. 다친 지렁이를 치료해주면서 빨리 달리지 못해도, 힘이 세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느리지만 섬세한 관찰력으로 주위를 더듬으며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간다. 주변을 돌아보며 친구들을 살피는 따뜻한 마음이 대견하고 인상적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주어지는 기본적인 환경, 그보다 더 중요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내면의 힘, 그것을 기르고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키우는 일, 어울려 사는 법을 알아가는 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고마움도 아는 달팽이를 기억하기로 했다. 많은 친구들과 경험하며 여행을 좋아하고 공감하고 소통할 줄 아는 달팽이, 이런 달팽이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달팽이를 통해 변화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긍정의 힘과 선한 영향력이 주변을 바꾸는 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긍정적인 자아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더불어 사는 삶의 필수조건 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다시 찾아온 추운 겨울, 달팽이의 여행은 끝이 나고 겨울잠을 다시 자러간다. 안경을 쓴 달팽이의 모습이 오래도록 남았다.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느리고 고요한 일상보다는 조급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일들이 많다. 빨라서 놓쳐버린 일들과 관심 밖에 있어서 잊어버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달팽이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웅크렸던 기운을 한껏 피면서 모두가 활짝 웃음으로 당도하기를 바래본다. 더디지만 함께 가자!! 우리!!

 

 김헌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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