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정책은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정책은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 최재용 전라북도 새만금해양수산국장
  • 승인 2023.10.0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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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최재용 전라북도 새만금해양수산국장

최근 새만금 국제공항, 철도, 항만, 연결도로 등 새만금 기반시설에 대한 2024년 국가예산안 대규모 삭감이 큰 논란이다. 국가재정법 및 국가예산편성지침에 따라 각 부처가 요구한 새만금 관련 기반시설 예산이 정부 예산안 편성 최종 마무리 시기인 8월 중순, 뜬금없이 80%가 삭감되어 국회에 제출된 것이다. 이 상황에 예산안을 제출했던 각 부처조차도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추려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법적 권한은 나에게 있다지만, 과연 그 권한을 임의(맡길任, 뜻意)로 행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큰 규모의 기반시설을 추진함에 있어 통상 ‘예타’라 부르는 예비타당성조사가 제일 큰 난제이지만, 사실 전후로 거쳐야 할 행정절차가 의외로 많다.

거의 모든 기반시설은 제일 먼저 소관 중앙부처가 5년 내지는 10년 단위로 수립하는 <종합계획이나 기본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 공항개발 종합계획,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항만기본계획, 국가도로망 종합계획 등이 그 예이다. 계획에 담긴 사업 중 소관 중앙부처는 <사전타당성 용역>을 통해 추진여부를 검토한다. 이렇게 제출된 사업에 대해 기재부는 다시 외부 전문연구기관에 맡겨 <예비타당성조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기획재정부 예타가 통과되면, 소관 중앙부처는 다시 세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그 내용을 <고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와 <총사업비 협의>도 해야 한다. 이런 기나긴 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실질적인 공사 시작이라 할 설계비가 반영된다. 아무리 바삐 가도 4년 안팎의 기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올해 8월 29일, 국토교통부가 뜬금없이 1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지금껏 추진해 오던 새만금 내 공항, 철도, 연결도로, 항만이 필요한지, 사업타당성이 있는지,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점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당황스런 상황이 되었다.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는 기재부 예타 완료시점을 기준으로 길게는 15년 동안 진행 중인 새만금 신항만부터, 불과 10개월 전에 예타 통과된 새만금 지역간 연결도로까지 필요성과 타당성, 균형발전 효과 등을 점검한다니 생각할수록 황당함 그 자체이다.

말이 점검이지 징벌적 성격의 가혹한 형벌과도 같게 느껴진다. 점검 계획 발표에 앞서 이미 각 부처가 반영한 예산의 80%를 삭감부터 시켜놓았다.

심지어 새만금 국제공항은 3개 기업이 올해 3월 턴키 방식의 입찰공고에 따라 5개월 넘게 기본설계를 작성해 8월 17일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계획된 입찰심의는 명확한 설명도 없이 절차이행이 중지되었으니, 차마 뭐라 말할 수도 없는 기업이 겪고 있는 억울함과 속 타는 마음은 또 어찌할까?

정책은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생명으로 한다. 뜬금없고 통상적이지 못한 점검 발표는 수십 년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국가의 사업관리 체계에 혼선을 초래했고,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기대이익을 흐트러뜨렸다. 학자들에게는 훗날 정책결정 과정의 실패사례로 흥미로운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사업 정지나 적정 공사비 부족으로 예측되는 공사현장의 훼손과 멸실 우려, 안전관리비나 환경보전비 등의 추가비용 발생, 불필요한 사업 장기화로 인한 총사업비 증가는 예산낭비 사례가 될 게 뻔해 보인다.

하지만 결국 먼 훗날 실질적 책임은 애꿎게도 남겨진 공무원이 온통 짊어지게 된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관련 업무 담당자나 이를 바라보는 사업 관계자의 마음이 불편하고, 또 무거워지는 까닭이다.

최재용<전라북도 새만금해양수산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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