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몽골 국제문학인대회를 다녀와서 ③
2023년 한국 몽골 국제문학인대회를 다녀와서 ③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3.09.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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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마 안전 교육을 간단하게 받고, 안전모로 무장하고, 초원 승마 트레킹에 나섰다. 하늘은 푸르고, 그 아래로 맑은 바람과 하얀 햇살이 은총 같이 쏟아지는 초원은 야생화 천국이다. 발아래 초원에서는 상큼한 초원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우리를 태운 말이 걷기도 하고 혹은 적당히 달리기도 했다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적을 공격하는 전투대형으로 늘어섰다. 그 순간 부끄럽도 모르고 크게 외쳤다 “ 저 초원 끝에 우리가 물리칠 적이 있다. 적이란 우리에게 원시의 초원을 빼앗아간 문명이다. 가자!” 이렇게 외치자, 채교수가 얼른 눈치 빠르게 장단을 맞췄다. “기마민족의 기백이 흐르는 말이구만.”

 말 등에서 두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훌쩍 흘러갔다. 이제 말과 친숙해져서 초원 어디에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아쉽게 말에서 내렸다.

말 등에 올라 적을 공격하기 위한 대형으로 섰다.<br>
말 등에 올라 적을 공격하기 위한 대형으로 섰다.

 승마장에는 좀 전까지 우리의 말을 이끌던 마부 소년들이 승마 묘기를 보이고 있었다. 달리는 말에서 몸을 아래로 기울여서 떨어진 모자를 낚아채 올리는 묘기를 펼쳤다. 처음에는 한 개 모자를, 두 개 세 개의 모자를 노련하게 낚아채 올려 갈채를 받았다. 이어 말의 상체를 위로 솟구쳐 오르게 하는 묘기를 선보였다. 

 승마를 마치고 저물녘에 테를지 게르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2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노희정 시인과 게르 뒷산을 산책하기로 했다, 얼마쯤

 걷다가 노 시인이 갑자기 늑대의 하울링을 토해내자 메아리 소리는 초원으로 멀리 퍼져나갔다. 먼저 올라가 바위에 앉아있던 김희범 시인이 같은 하울링으로 화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늑대처럼 자연스럽게 바위산에서 어울렸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바위는 저마다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뭘 닮았다고 쉽게 말하기 어려웠다. 기괴한 바위 형상을 보면서 예전에 금강산에서 보았던 만물상에 펼쳐진 선경과 바위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금강산도 몽골의 초원에서 조화롭게 서 있는 바위나 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초원에 펼쳐진 야생화 향기에 흠뻑 취해 히말라야 트레킹 노래를 흥얼댔다.

 우리 세 사람은 바위에서 걸터앉아 초원의 아름다움을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제안했다 “우리 언덕에 올라가서 신나게 뒹굴어 저 아래까지 내려가자.”라고. 내 말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러자며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래로 뒹굴기 시작했다. 우리 세 사람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래 30m 정도를 굴러서 내려갔다. 다 굴러 내려가 일어서자 갑자기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속이 메슥거렸지만 호기를 부리듯 “또 하자!” 소리쳤다. 모두 어린애로 돌아간 우리는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 뒹굴어 내려왔다.

 아주 오래전, 몽골을 드나들 때 몽골 초원의 길에 매료되어 역사탐방은 뒤로 하고 몇날 며칠 동영상을 찍었다. 그 당시 단국대 교수 두 분과 고 이애주 서울대 교수와 함께 길도 없는 길을 만들어 갔다. 맨 처음은 전봇대를 이정표로 삼아 달리다가 전봇대가 사라지자 기사는 본능적 감각으로 지프를 몰고 갔다. 지프가 초원을 지나가자 두 줄로 길이 나란히 났다. 초원에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된 길도 있다. 그 길가로 버드나무 대신 자작나무가 서 있다. 나는 자작나무 껍질을 주어 만지작거리며 김기림의 산문에서 따온 시 「길」을 가만가만 읊조렸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내 어린 시절도 첫사랑이 언덕길로 사라졌다. 언제 낳는지 모르는 동구 밖 미루나무 지나 떠나갔다. 첫사랑이 그리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언덕에 올라 데굴데굴 굴렀다.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린 첫사랑이 그리워서 반복해서 굴렀다. 언제 다시 몽골 초원에 와서 이렇게 할 수 있으랴 싶어 욕심을 냈다 그런데 속이 울렁울렁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녁 시간이 되어 언덕을 내려왔다. 어지러워서 자연 비틀걸음이 되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행이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중이었다, 몽골의 전통 양고기 요리 허르헉이라는 색다른 요리가 내 앞에 놓였다. 나는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지만, 갑자기 양의 맑고 선한 눈망울이 생각나서 차마 포크를 들 수가 없었다.
 

 몽골 초원의 밤이 깊어가고 서늘해진 바람과 함께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10시 30분에 캠프파이어가 시작됐다. 빙 둘러앉아 박건호 시인의 「모닥불」 노래를 불렀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를 시작으로, 홍태식 교수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이어 채길순 교수가 <울고 넘는 박달재>를 구성지게 뽑았다. 흥이 무르익어가고 김호영 시인이 몽골 음악에 맞춰 멋들어지게 춤을 추기 시작하여 모닥불 둘레로 춤판이 벌어졌다. 그 순간 수년 전에 이 몽골 초원에서 살풀이춤의 대가 이애주 선생이랑 춤추던 기억이 살아났다. 유신 독재정권에서 저항하다가 스러져간 젊은 열사들의 혼을 위무하던 그분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이국의 밤이 흐르고 이제 별을 보러 가는 시간이다. 버스에 올라 별이 쏟아지는 별바라기 원정길에 나섰다. 내 생애에서 가장 별을 아름답게 본 곳을 꼽자면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본 별이다. 두 번째는 몽골 초원이었다. 그리고 다음은 아프리카 세렝게티였다. 세렝게티에서 은하수의 물결에 떠 흐르던 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전날, 몽골 초원에서 봤던 별에 대한 기대로 연신 버스 창밖으로 밤하늘 이쪽저쪽을 내다보았다. 몽골에서 체류했을 때 주먹 같은 별을 머리에 이고 사는 유목민이 부러워서 시를 썼다. 

 별이 툭툭 떨어지는 나라가 있습니다/ 발에 채여/ 차마 걸어 나가지 못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끝자락 없는 초원 위에/ 무더기로 나뒹구는 별의 무리/ 밤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있습니다/ 한 움큼씩 별을 먹고 태어난/ 아이들의 눈빛은 별빛입니다/ 바이칼 호수보다도 깊고 푸른 눈빛의 아이들이/ 말이나 양 떼의 친구가 되고/ 까칠한 햇살 속으로 내달리던 아이들이 자라/ 푸른 초원 위에 떠 있는 별이 된다고 합니다/ 아이가 된 별과/ 별이 된 아이들이 모여 사는/ 게르 화톳불 속에서/ 나는 몽골 호랑이의 눈빛을 바라봅니다. 「게르에서의 일박(一泊) -몽골에서2」 (전문) 

 그러나 몽골 초원 별들이 어디로 마실을 갔는지 별이 크지도 많지도 않아 내심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이곳 테를지 국립공원도 10년 전보다 숙소가 많이 늘었고, 현대화 된 건물들이 들어찼다. 이곳도 이제 현대문명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아무 길도 없는 원시의 땅 초원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 같아서 아쉬운 마음을 이만 접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자 떠 있는 별 위로 열아흐레 노란 달빛이 초원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저 멀리 바위산자락에서 짝을 그리워하는 푸른 늑대의 애절한 울음이 들려올 것 같았다. 우리로 치면 깊은 밤에 들려오는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 같이.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

 전북 부안 출생. 문학박사. 1991년 등단, 아동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서울문학상 수상.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둥지는 없다』 『채석강을 읽다』 『둥지는 없다』 『녹두꽃은 지지 않는다』 외. 도서출판 생각이 크는 나무 대표. 부안군 동학농민혁명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이사.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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