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몽골 국제문학인대회를 다녀와서 ②
2023년 한국 몽골 국제문학인대회를 다녀와서 ②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3.09.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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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가 끝나고 한국 몽골 문인 학자의 기념사진

 만찬장으로 장소를 옮겨 두 나라 학자와 문인 간의 친목 겸 만찬이 이어졌다. 우리 일행은 유철상 교수가 준비한 칭기즈칸 보드카(35도)로 첫 건배를 제안했다. 이때 나와 노희정 시인이 “35도는 약해서 비린내가 나니까 도수가 더 높은 술로 건배하자.”라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이어 홍태식 유라시아포럼 이사장의 건배사가 있었고 또 다른 건배 제의는 여러 시인과 학자들의 몇 차례 더 이어졌다. 주흥이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 “노래해! 노래해!”라고 외치자 이두의 시인이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더니, 이남희 시인에게 노래하라며 마이크를 넘겼다. 나는 처음 듣는 진도아리랑 가사에 웃음이 터져 나와 흥에 겨워 독한 보드카를 홀짝홀짝 마셨다. 이때 진행자 채길순 교수가 보드카를 따라주면서 “이게 뭣이여.”하고 물을 때마다 술을 받는 사람이 ‘정’이라고 하고, ‘사랑’ 혹은 ‘눈물’, ‘열정’이라고 대답했다. 역시 문인다운 재치가 번뜩였다. 한나절 빡빡한 학술대회 일정을 마친 한국과 몽골 학자, 문인들의 주흥으로 ‘불타는 토요일 밤’이 깊어갔다.
 

양을 찾아, 초원의 품에서 노닐다 

 셋째 날(9월 3일), 우리를 태운 버스는 테를지 몽골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좌우로 드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쪽빛 하늘 아래 가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이 부드러운 지평선으로 꿈결같이 어울렸고, 푸른 비단 위에 소 말 양 염소 낙타 아크가 유유자적 노닐고 있었다. 전날 시 낭송 시간에 들었던 구애영 시인의 시 「양을 찾아서」가 머리에 스쳐 갔다.

 그래, 우리는 지금 양을 찾아가고 있다. 

  “양 한 마리는 선택되었고/ 모든 자연의 의식 속에서 가장 무죄한 저 걸음걸이/ 죽음으로걸어갈 때 누구라도 하늘을 보고 땅을 볼 것이다” 「양을 찾아서」 부분 

 이 땅의 모든 생명체가 죽을 때 정말 하늘을 쳐다보는지 땅을 쳐다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쯤 가장 가까운 자신의 발을 내려다볼 것만 같았다. 식탁에 올라온 양고기를 대할 때마다 구 시인의 시 속에 등장하는 “가장 무죄한” 선한 양의 눈망울이 떠올라서 포크가 내려가다 멈추곤 했다. 

초원 위에 선 어워.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초원의 언덕에 자리 잡은 몽골 민간신앙 터 어워에서 쉬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낭당 같은 돌무더기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우리는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돌며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나는 제일 먼저 불면증을 떨쳐 버리고 오래전에 잃어버린 ‘잠의 길’을 찾게 해달라고 빌었다. 특별히 가지고 있는 종교는 없지만, 굳이 사람들이 물어보면 천주교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믿음은 별로다. 그래서 다른 종교도 쉽게 인정하고 절에 가서 108배도 가끔 한다.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의 신들에게 넙죽넙죽 절을 잘도 하고 다닌다. 히말라야에 갔을 때는 설산을 향해 절하고, 나무에게, 바위나 돌탑을 향해 절하고 기도한다. 내가 누구보다도 절박한 사연이 많아서일까.

 어워 곁에는 사냥 독수리를 말뚝에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칭기즈칸만큼 덩치 큰 사내가 서 있었다. 먼저, 모 시인이 독수리를 번쩍 들어올리기에 너무 부러워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자신하여 3달러를 지불했다. 그렇지만 너무 무거워서 들어 올리는 데 실패했다. 3달러가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뭔 놈의 독수리가 그리 무거운지 끝내 포기했다. 7-8kg이 넘는다나? 독수리 주인 사내와 사진만 찍고 만 내 허약한 체력이 한심하기만 했다.

 버스가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들어서자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이 사방으로 둘러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기암괴석마다 각종 전설이 얽혀있을 것 같았다.

 테를지 국립공원을 산책하는 시간. 드넓은 초원에는 각양각색, 크고 작은 야생화가 가득했다. 초원의 이름 모를 꽃들을 볼 때마다 뭉뚱그려 야생화일 뿐, 이름을 불러주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야생화 이름을 보아 뒀다. 하늘빛 소국과 분홍빛 소국도 지천으로 피어있었고, 메양귀비, 에델바이스, 각종 들국화, 보랏빛과 푸른색이 섞여 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매운 향기를 뿜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우리 식 달래도 있고, 할미꽃도 있었는데 꽃 모양이 좀 갸름하고 길쭉했다. 그래서 새로운 야생화를 보면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코를 대고 음미하곤 했다. 그것이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야생화에 대한 예의일 것 같았다.

 초원의 야생화 중에 민들레가 지천으로 널렸는데, 노란 양산을 펼쳐 들고, 곁에는 민들레 홀씨가 여행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민들레 꽃대를 꺾어 홀씨를 바람에 즐겁게 날려 보냈고 어느 시인이 누가 홀씨를 더 멀리 날리는지 내기하면서 깔깔대기도 했다. 이남순 시인의 시 「민들레 편지」처럼 민들레 홀씨가 정처 없이 날아갔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과 산 비탈길과 멀리 게르 앞마당까지, 아니 이역만리 임에게까지 날아가지 않을까. 

 겹겹이 설운 가슴 조심조심 껴안아도/ 바람보다 꼿꼿하게 지켜왔던 순결인가/ 참았던 울음보인가 구름 같은 꽃 한 송이// 울컥, 하는 북받침도 꿈이듯 설렙니다/ 빈한한 내 가슴에 당신 숨결 겨웁던 날/ 생전에 첫 마음 열어 화답으로 드렸으니// 허공에 버티고도 품은 뜻 꿇지 않는/ 그 봄날 숨찬 사랑 내 절망도 깨어나서/ 외마디 꽃대궁에는 당신만의 꽃일래요// 꽃들이 피었다고 다 꽃은 아니옵고/ 나지막이 피울망정 함부로 피지 않는/ 당신만 온새미로의 내 향기 받으소서. 「민들레 편지」 (전문) 

 민들레 홀씨가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신만의 꽃일래요” “당신만 온새미로의 내 향기 받으소서”라는 곡진한 사연만은 임에게 배달되었으리라. 

기암괴석과 흰 자작나무숲과 초원

 테를지 국립공원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무리 지어 서 있거나 홀로 눕거나 우뚝 서서 잔 바람결을 막아서기도 했다. 그중에는 하늘을 향해 잠든 돌도 있었고 때로는 자기만의 독특한 형상을 장식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엽서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어 인심 좋은 바위에 걸터앉아 즉흥적으로 시 한 수 썼다. 

  “테를지 공원에서/ 거꾸로 처박혀/ 배를 허옇게 드러내놓고/ 잠에 빠진 돌을 본다/ 돌은 옷을 입지 않고/ 그저 이슬방울 몇 점/ 등짝에 바르고 산다/ 가릴 것 어디 있느냐며/ 물소리나 새소리 헤며 산다/ 가릴 것 많아/ 옷 껴입는 사람들 바라다보며/ 잠에 든 돌의 침묵이/ 내 안으로 깊이 들어와/ 꿈속에 꿈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테를지, 돌」 부문 

 거북바위는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제일 유명하지만, 멀리서 거북의 형상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 거북바위 안쪽으로는 부처님이 타고 다녔다는 코끼리를 형상화한 아리야발 불교 사원이 있었다. 사원 입구에는 우리 절처럼 사천왕상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절 문으로 들어서자 완만한 경사를 따라 초원이 정원처럼 펼쳐졌고, 그 끝에 병풍을 세운 듯 선 바위산 아래 두 개의 사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 멀리 병풍바위에 몽골의 전통 문자가 새겨지고 색깔까지 입고 있어서 호기심에 그 바위까지 가보고 싶었다. 자칫 일행과 떨어질 것 같아 잠깐 망설였지만,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출발할 때 본 것보다 돌산이 가팔라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 나오기에는 너무 멀리 들어간 까닭에 끝까지 갔다. 그 바위에 새겨진 문자는 ‘옴마니반메훔’이란다. 우리말로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다. 이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뜻하는 주문인데, 이를 지극정성으로 읊으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바위 아래서 또 소원을 빌었다. 

몽골 전통 가옥 게르에서

 테를지 국립공원의 로지 캠프에서 점심을 코스 요리로 먹고, 승마장으로 옮겼다. 우리를 태워줄 말들이 초원 한 가운데 허공에 매달린 줄에 고삐를 달고 서 있었다. 말이 많다 싶었지만 말이 부족해서 다른 곳에서 사람과 말이 더 와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 전통 유목민 집 게르를 구경했다. 출입문 위의 문틀이 낮아서 이마를 부딪쳐 오늘 밤에 보기로 한 별을 미리 보는 사람이 많았다.

 여주인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를 대접하는데 정성이 담겼다. 다섯 아이를 뒀는데, 큰애는 중학생이라서 곁에 새 게르를 마련해줬다고 했다. 마유주와 수태차를 대접해 줬는데 마유주(馬乳酒)는 알콜 성분이 전혀 없는 발효 식품이라 시큼한 맛이 썩 당기지는 않았다.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

강민숙 시인

 전북 부안 출생. 문학박사. 1991년 등단, 아동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서울문학상 수상.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둥지는 없다』 『채석강을 읽다』 『둥지는 없다』 『녹두꽃은 지지 않는다』 외. 도서출판 생각이 크는 나무 대표. 부안군 동학농민혁명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이사.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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