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51> 차의 길 54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151> 차의 길 54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3.09.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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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아래 차밭 전경

 

  한가로이 창 아래 잠에서 깨니 혀가 마르고
  선과(仙菓)와 햇차가 손님 쟁반에 가득하네.
  한 조각을 입에 넣자 마음이 절로 상쾌해지고
  반 사발을 마시자마자 뼈가 먼저 시리네.
  담박한 산야 정취 오롯이 누리려 했건만
  쓰고 신 세상 맛 누가 실컷 맛보게 했나.
  백발 다 되도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역마를 채찍하여 가파른 산을 넘노라.
 

  위의 시는 이정(李楨, 1512~1571)의 『구암집』 권1 속집에 실려있는 「옥천의 시에 차운하다(次沃川韻)」 이다. 누구의 시에 차운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잠시 한가히 즐긴 낮잠에서 깨어 맛본 선과와 차의 맛을 노래하였다. 마음이 상쾌해지는 선과와 뼈가 시리도록 정신이 맑아지는 햇차에 어울리는 담박한 산야의 정취를 누려 보고 싶은 마음인 듯하다.

  백발이 다되도록 고향 땅도 밟아보지 못하고 세상의 쓰고 신맛을 실컷 맛봐야 하는 자신의 처지와 역마를 재촉하며 산을 넘고 있는 모습까지 그린 것으로 보아 진정 어느 것이 이정의 마음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풍가빈도 「개다전(芥茶箋)」에서 차를 마시기에 마땅할 때는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나야 하고, 세상일에 얽매임이 없어야 할 때라 했다. 이렇게 공직에 노심초사하는 이정 이지만 한편으로는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고서는 한가로이 차를 마실 수 없다는 푸념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이정은 36년간 관직에 있었는데 외직에 19년, 내직은 4년이며 13년은 일정한 사무가 없는 벼슬에 있었으며 혹은 병으로 벼슬을 사양하였다고 한다. 이정은 어릴 때부터 침착하고 꿋꿋하며 단정하고 진실하여, 함부로 말하거나 웃지 않았다고 한다. 장성해서는 학문으로 빛이 났으며, 평소 말을 빨리하거나 당황해하는 기색이 없었으며 잠을 자지 않고 학문을 연마했다고 한다. 30세되던 해에 퇴계 이황(1501~1570)을 찾아가 문인이 되었으며, 퇴계의 제자 중에서 성리학서 간행에 가장 열의를 갖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퇴계의 차에 대한 시 『퇴계집』 속집 권2에 실린 「어제 농암 선생을 뵙고 느낀바 있어 시를 짓다」가 있다. 농암 이현보(李賢輔, 1467~1555)를 모시고 차를 마시며 거문고 소리를 듣고 감상한 것을 읊은 시이다.
 

  숲속의 높은 누각은 배처럼 자그마한데
  저녁나절 평대에 올라 푸른 강물 굽어보네.
  잎이 지고 나니 소나무 꼿꼿한 줄 알고
  서릿발 매서울수록 국화 향기 짙어라.
  산골 아이는 찻물 끓는 것을 분별할 줄 알고
  거문고 타는 여종은 수조두를 노래하네.
  부끄러워라, 속된 마음 완전히 끊지 못한채
  상암의 선경에서 선생을 모시고 노닐었네.
 

  주변의 무성한 잎이 지고 나니 소나무가 꼿꼿한 줄 알았고, 서릿발 매서울수록 국화 향기 짙게 드러나니 좋은 시절에는 몰랐던 절개와 아름다운 향기를 힘들 때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산골 아이 조차 자신의 소임인 찻물 끓이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데, 잠시나마 속된 생각에 머물렀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이들은 일상에서 조차 자신의 마음 자리를 살피고 학문을 통해 실천하고자 했다. 사실 차 끓이는 것을 분별한다는 것은 차와 물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으로 차의 맛을 내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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