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은 사랑이다
투쟁은 사랑이다
  • 염영선 전라북도의회 대변인
  • 승인 2023.09.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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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나 못가겄소…. 먼저 가시오….” 지난 일요일 전주에서 개최된 부부마라톤 대회 10km 출전한 아내가 출발 1km도 못가 절규다. 오메~ 갈 길이 구만리 같은데 앞길이 캄캄했다. 부부마라톤 규정상 부부는 출발점과 반환점, 도착점에서 두 손을 잡아야 기록이 인정된다.

 규정도 규정이지만 남편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저 혼자 기록 내겠다고 아내를 두고 간다는 것은 인지상정과 사회규범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다음날부터 국물도 못 얻어먹을까 후환이 두려웠다.

 가을 초입이다. 여전히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이 억수로 났다. 삭발을 해서 여과 없이 땀이 흘러내려 뛰는 내내 눈이 쓰려 죽는 줄 알았다. 빗물을 흡수하는 숲의 중요성을 적나라하게 체험했다.

 요즘 전북은 가는 곳마다 빡빡머리가 대세다. 지난 9월 5일 전북도의회에서 필자를 비롯한 14명의 도의원이 삭발을 시작한 이래로 지역의 국회의원과 시군의원, 그리고 시민단체 회원들이 뒤를 잇고 있다.

 이는 봉기의 단초다. 지난 2016년 촛불혁명이 아른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윤석열 정부는 국민을 개·돼지로 여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독립 영웅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반대하는 국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할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국민을 일컬어 1+1=1=100으로 억지를 부린다고 비아냥할 수 있단 말인가. 야당 대표가 병원에 실려 가는 날,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나 몰라라 순방길에 오르고 검찰은 훌랄라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단 말인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우리가 이런 모멸을 당하려고 그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쳤던가, 우리가 이런 수모를 겪으려고 최루탄을 마셔가며 열사들이 죽어갔던가.

 전북은 조선의 독립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 어느 지역보다 의병과 열사를 많이 배출한 애족·애국의 땅이다. 그 피와 땀에 보상은커녕 예산으로 장난치며 전북인의 자존에 피멍을 주고 있다. 이쯤에서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반환점인 게 몸이 좀 풀렸으니 속도를 내는 게 어떻소….” “아이고, 이 양반아~ 나 죽겄소…. 속 편한 소리 좀 작작하시오….” 5km 지점에서 괜한 소리했다 본전도 못 챙겼다. 그도 그럴 것이 사전에 아내와 아무런 상의 없이 동반 마라톤을 신청했던 것이다. 30년 결혼생활 내내 매사에 그랬다. 생각해보면 간 큰 남자였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가정이 화목해야 세상만사가 형통한다는 말이다.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부부화만사성(夫婦和萬事成)’이다. 부부의 사랑이 봉사와 헌신의 원천이 아닐까.

 그 사랑이 연인의 연정일 수도 있고 친구의 우정일 수도 있고 자식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다. 사랑 없이 어찌 투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랑 없이 어찌 투사가 될 수 있고 열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가 존경하는 정읍 출신 전봉준 장군과 백정기 의사 그리고 최덕수 열사가 바로 그런 사랑의 승화다.

 “밥은 먹고 하요 ” “아, 이 양반아~ 단식하는 데 무슨 밥을 먹겄소 ” 지난 9월 초 필자가 삭발하고 단식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의 어처구니없는 첫 안부 인사다. 이 대목에서 ‘내부자들’ 이병헌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여보~ 단식 끝나면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합시다.’

 염영선<전라북도의회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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