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밭에서’
- 주선미 시인
“나도 잘 나가는 여자였어야,
지금 꼬락서니가 이렇게 생겼어두
젊었을 적이 짧은 치마에 빼족 구구 신고
엉덩이 씰룩씰룩 걸어 댕기면
쫓아오는 남정네들 쌔고 쌨어야.”
밭고랑에 푸짐한 엉덩이 풀 몇 포기 깔고 앉아
며칠씩이나 쏟아부었던 장대비로
듬성듬성 뿌리 내린 참깨 몇 가닥
베고 있는 뒷집 아주머니
흙 더께 진 두 손으로
푸대 자루에 깻대 싸서 머리에 이고
씰룩씰룩 집으로 가고 있다
“그렇게 이쁘게 꽃 피고 푸짐하게도 잘도 열었는디,
이늠두 날 닮았내벼, 왜 이리 허접하댜,
사람두 곡식두 젊고 이쁠 때가 최곤디”
<해설>
이 시는 ‘뒷집 아주머니’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 내고 있습니다.
첫 연은 ‘뒷집 아주머니’의 “젊었을 적이 짧은 치마에 빼족 구구 신고/ 엉덩이 씰룩씰룩 걸어 댕기면/ 쫓아오는 남정네들 쌔고 쌨어야.”라고 자신의 영화로웠던 시절을 소환합니다.
이에 비해 현재 ‘뒷집 아주머니’의 처지는 어떤가요? “밭고랑에 푸짐한 엉덩이 풀 몇 포기 깔고 앉아/ 며칠씩이나 쏟아부었던 장대비로/ 듬성듬성 뿌리 내린 참깨 몇 가닥”을 베면서 한탄합니다. 그리고 “흙 더께 진 두 손으로/ 푸대 자루에 깻대 싸서 머리에 이고/ 씰룩씰룩 집으로 가고 있는” 늙고 초라한 여인일 뿐입니다.
끝에서 팔자타령을 다시 합니다. “그렇게 이쁘게 꽃 피고 푸짐하게도 잘도 열었는디,/ 이늠두 날 닮았내벼, 왜 이리 허접하댜.”
시인 식 담론으로 말해보자면 소싯적에 어디 한 가닥씩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이나 곡식이나 최고의 가치를 누릴 때가 있었지요. 그러고 보면 “허접한 깨를 베는 뒷집 아주머니”의 팔자타령이 뭇사람의 모습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왕년에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라고 큰소리치면서 주눅 든 자신을 발딱 일으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공연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