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54> 아편보다 강력했던 Gin 광풍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54> 아편보다 강력했던 Gin 광풍
  • 이강희 작가
  • 승인 2023.09.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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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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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1688년 11월 15일 (율리우스력 11월 5일).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이 이끄는 네덜란드군이 잉글랜드 데번주(州)의 브릭스햄 인근 토베이에 상륙하였다. 약 1만 5천여 명에 이르는 오라녜 공의 군대는 잉글랜드인들에게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들은 런던으로 진군을 하였다. 결국 가톨릭(구교)을 지지하던 제임스 2세가 몰락하고 국교회(신교)를 신봉하던 젠트리 층은 자신들이 기획한 쿠데타에서 승리한다. 이것이 ‘명예혁명’이라고 잘 못 불리고 있는 잉글랜드 내전의 모습이다. 이후 오라녜 공은 부인 메리와 함께 잉글랜드의 왕으로 추대되었고 역사에서는 그를 윌리엄 3세로 부른다.

윌리엄 3세가 네덜란드에서 이끌고 온 것은 군대만이 아니었다. 유대인과 네덜란드의 금융기법을 들여와 은행을 설립해 잉글랜드의 재정을 튼실히 하고 대영제국으로 가는 발판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네덜란드의 유대인이 오늘날의 잉글랜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더불어 하나 더 있다. 바로 진(Gin)이다. 네덜란드에서 진(Gin)은 약이었다. 이뇨제와 혈액순환제로 사용되었던 진(Gin)은 1649년 네덜란드의 의사였던 실비우스 드 부베(Sylvius de Bouve)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약술이다. 주니퍼 베리(잉: Juniper berry, 즉 노간주나무의 열매인 두송실)를 넣어서 발효한 술을 증류해서 만들었다. 이것에 약재의 이름을 붙여 ‘주니에브르’라 부르고 이뇨, 해열 등의 효과를 봐야하는 환자에게 주로 처방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약으로 복용하기보다는 술로 마시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유명한 ‘볼스’라는 회사가 1664년 이 술을 처음으로 상품화해서 판매를 했다. 이후 1689년 네덜란드에서는 자신들의 통치자였던 오라녜 공을 왕으로 추대한 잉글랜드로 이 술을 수출했고 잉글랜드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이후 주니에브르(Genievre)를 제네바(Geneva)로 부르던 잉글랜드인들이 앞 글자를 따서 ‘Gen’이라 부르다 잉글랜드 방식으로 부르면서 오늘날에는 ‘Gin(진)’이라고 불린다. 잉글랜드에서는 럼을 주로 마셨지만 서인도 제도 일대를 프랑스에게 빼앗기면서 럼을 만드는 원료인 당밀을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잉글랜드인들은 네덜란드에서 수입되는 진을 잉글랜드에서 생산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향을 줄인 ‘드라이 진’을 만들었다. 값싼 곡물을 사용하다 보니 대량 주조를 통해 널리 보급(?) 시킬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진(Gin)은 위스키보다도 저렴했기에 잉글랜드가 자리한 브리튼 섬 일대를 장악하게 된다. 진(Gin)이 가져온 광풍은 상당했다. 많은 사람을 알코올 중독에 빠뜨려버린 진(Gin)으로 인해 잉글랜드는 알코올 중독이 유발하는 사회 범죄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독성이 강한 아편은 잉글랜드 정부의 관심밖에 있었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유아에게도 아편을 먹이는 행동이 자연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글 = 이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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