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블루문이 말을 걸다
슈퍼 블루문이 말을 걸다
  • 이소애 시인
  • 승인 2023.09.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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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밤 슈퍼 블루문이 떴다. 마치 바라만 보아도 행복을 듬뿍 안겨줄 것 같은 눈부시게 빛나 보이는 달이었다. 멀리 있어도 가까이서 손잡아 주는 사랑의 전율이 감도는 것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서다.

고층 아파트 사이로 떠오른 달의 모습은 한없이 둥글어서 빛을 품고 있으면 모가 나지 않은 사람처럼 가슴이 벅찼다. 이 기쁨의 순간을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할 것 같아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달이 공전 궤도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운 지점에 도달할 때 관측할 수 있는 달이라고 하니 소중한 행복을 누리는 순간이었다.

이번에 놓치면 14년 뒤에나 볼 수 있다는 달이 휘영청 내 눈앞에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슈퍼 블루문은 2037년 1월 31일에나 찾아온다고 하니, 달빛 맞이 행사를 나 혼자서 했다. 딱 맥주 한 잔이면 달빛이 내 곁으로 와 껴안아 주는 고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독한 잔치였지만 자비를 베풀 것 같아 말을 건네본다.

요즘 정신적인 혼란 때문인지 새벽잠에 시달린다. 처리수라고 써야 할지 오염 처리수라고 원고지에 옮겨야 할건지 컴퓨터 자판기에서 손가락이 갈팡질팡 힘을 잃고 있다. 가을의 맛을 식탁에 올려놓을 꽃게장이 면역력이 약한 가족이 먹어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 절벽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 마음을 눈치를 챈 듯 새벽 산책길에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에 깜짝 발을 멈추었다. 매미의 소리를 기억에 저장하고 싶었다.

핏자국처럼 선연한 이른 단풍이 수직으로 선을 그으며 땅으로 눕는다. 한때 사랑했던 기억을 허공에 색칠하면서 잘게 부서진다. 멈칫 인생의 마지막 교향곡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유튜브로 감상할 때였다. 비창이 산책길에 성스럽게 울려 퍼지고 있을 때 소리 없는 미소를 아껴가며 달은 이별의 빛을 서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지상으로 추락하는 매미의 노래는 끊겼다. 순간의 풍경이었다. 꼼짝달싹하지 않은 매미는 누운 채로 날개를 접은 것이다. 죽었다. 자살일까?

14명이 희생된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49재까지 치렀다고 하는데,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숨진 교사의 49재 추모 집회를 보니 가슴이 아렸다. 숨진 교사의 어머니가 쓴 편지를 대독하는 목소리는 떨리다 못해 피를 토해내는 것 같았다.

여름 밤낮을 노래하던 매미의 소리는 세상을 어둡고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교사들은 왜 죽음으로 내몰리나!’ ‘7년을 땅속에서 살다 단 열흘 동안 세상에 나와 사는 거라면 왜 허물을 벗고 세상으로 나올까? 그 아픔을 위하여 매미는 무슨 노래를 부를까? 맨 마지막 노래는 무슨 노래를 부르고 눈을 감는 걸까?’

가슴에 저며오는 아픔이 아름다운 빛으로 나를 위로하는 슈퍼 블루문에 가까이, 더 가깝게 손을 뻗어 기도할 일이다. 내가 나의 외로움을 말하기보다 달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밝은 달, 제일 크게 보이는 달과의 거리는 약 35만 7,431km로 평균 거리인 38만 4,400km 더 가까워진다고 한다.

달의 크기보다는 나를 흥분시키는 것은 14년 후에 볼 수 있다는 데에서 나의 기도는 절실했다. 절실한 내 마음에 무조건 순종하고 싶어진다.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 거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그 작은 심장 안에/ 이토록 큰 슬픔을 넣을 수 있습니까?’// 신이 대답했다./

‘보라, 너의 눈은 더 작은데도/ 세상을 볼 수 있지 않느냐.’ 「내 심장은 너무 작아서」전문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 ‘잘랄루딘 루미’(1207~1273)의 시를 가슴에 새기면서 심장 안에 있을 슬픔을 꺼내어 무지갯빛으로 물들여 보는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 본다.

창밖의 단풍 든 나무가 고독으로 다가오는 가을이 왔다. 오래오래 물든 나뭇잎과 감정을 나누고 있으면 가을에 물듦을 안다. 알기 때문에 벌거벗고 겨울을 맞이할 나무의 외로움은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싶은 자비를 생각한다.

이소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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