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예산제도 비판한다
후진국형 예산제도 비판한다
  • 신원식 前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 승인 2023.09.0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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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정부가 2024년도 국가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새만금예산을 대폭 칼질하였다. 당초 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 요구액이 6,626억원이었으나 기획재정부 심사를 거치면서 1,479억원으로 78%가 날아가 버렸다. 과거 3개년도의 중앙부처 요구액과 기재부 예산안을 비교해보면, 21년도 예산안은 4,537억원이 4,665억원으로 103%, 22년도는 4,078억원이 5,677억원으로 139%, 23년도는 5,115억원이 5,173억원으로 101%로서 기재부 심의단계에서 오히려 증액되었다.

 새만금항 인입철도건설 예산 100억원 등은 전액 삭감되고 새만금국제공항과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예산 등은 반영률이 30%도 안 되는 참담한 수치이다. 이에 반해 기본계획조차 없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은 23년도 예산 130억원의 40배가 넘는 5,363억원을 24년도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한다. 필자의 과거 중앙부처와 전북도청 근무경험을 통해 볼 때 기재부에서 정상적인 예산심의가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없으며, 이는 단연코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다.

 기재부 예산실은 중앙 각 부처에서 예산요구안을 올리면 최대한 존중하여 심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중앙부처에서 요구안을 짤 때는 이미 관계법령이나 전년도 예산규모, 실현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기재부에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제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 예산심의 단계에서도 새로운 증액예산 안건이 생기면 반드시 기재부와 아울러 유관부처의 동의를 받아 오도록 하고 있다.

 새만금기본계획의 향후 변경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현행 기본계획하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요구한 항목별 연간 예산안을 보류시킨다는 것은 행정절차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후진국형 행태이다. 행정절차법 제4조에 따르면 “행정청은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해석 또는 관행에 따라 소급하여 불리하게 처리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에 삭감당한 신항만,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인입철도 등 주요 사업은 22년도 이전에 이미 정부의 예비타당성심사를 통과한 사업들이며, 새만금 국제공항은 19년1월에 예타심사를 면제받은 사업이다. 이러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요구한 예산을 무시한다면 이는 현행 새만금기본계획의 추진을 소급하여 불리하게 처리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히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쉽게 설명해서, 어느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개발계획을 발표한 후 이를 믿고 수요자들이 분양신청을 하고 계약금을 지불한 상황에서 갑자기 타당한 이유도 없이 당초 계획과는 현저히 다르게 주변도로나 편의시설 공사를 중단해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새만금에 투자를 결정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들의 투자결정시 중요요소 중 하나는 국제공항, 항만, 철도 등 물류경쟁력이며, 이를 믿고 공장을 짓고 생산계획, 수출계획을 짜고 기술인력을 확보해 가고 있는 것인데 하루아침에 이러한 주변 인프라에 차질이 생긴다면 어느 기업이 정부를 믿고 투자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후진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과거 러시아, 필리핀 등 요청으로 우리 기업들의 국외투자를 검토한 바가 있었는데 바로 이러한 현지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결정을 하지 못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새만금예산 칼질과 같은 후진국형 예산제도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며, 반드시 금년도 정기국회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신원식<前전라북도 정무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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