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0> 차의 길 53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150> 차의 길 53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3.09.0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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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홍길동전』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오는가. 우주 운행의 프로그램에 맞춰진 삶의 공간, 인간은 한낮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우리의 행보를 가끔은 주춤하게 한다. 우리네 마음을 잡는 것이 무엇이든 일상보다는 일탈을 꿈꾸며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의 삶을 걱정했던 이들이 있어 사회는 변화하는 것이다.

  조선 중기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허균(許筠, 1569~1618), 활달한 성품과 호방한 기상으로 다양한 사상적 견해를 가진 인물이며 『홍길동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허균은 허엽의 막내 아들로 위로는 허성과 허봉이 있다. 이들 모두 문재(文才)였다. 허균은 5살 때부터 글을 배워 9살에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버릇없이 자랐다고 할 정도로 형제애가 남달랐다.

  하지만 둘째 형 허봉이 이율곡을 탄핵하다가 귀양을 가게되었고, 그를 이해하고 아끼던 형이었기에 좌절감은 더욱 컸다. 누이 허난설헌과는 시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달래는 등 서로 의지를 하게 된다. 여섯 살이 더 많은 허난설헌이 시집간 뒤 시어머니와의 불화와 방탕한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자 허균의 마음은 더욱 외롭고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외로움과 애절함이 늘 함께했던 그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교유한다. 사상가이며 문장가이고 관료였던 그는 사실 낮은 벼슬을 하다가 여러번 쫓겨났는데, 벼슬아치들이 보는 시험에서 여러번 일등을 한다. 이에 공주 목사로 부임하지만 재물 보다는 박봉의 월급으로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까지 돌본다. 자신보다는 다른이들의 삶을 챙겼던 허균도 고달픈 관직 생활 속에 자신만의 한적한 삶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다음은 허균의 마음이 잘 드러난 「감회를 쓰다」라는 시이다.

 

  물러나고 싶다 해도 해마다 미뤄지더니
  늘그막에 귀양살이할 줄 뉘 알았으랴.
  원수 놈들 제멋대로 무고하거나 말거나
  나의 마음을 벗들은 이해하겠지.
 

  봄에 핀 꽃들은 병든 눈 씻어주고
  비 온뒤 산새는 그윽한 잠을 깨우나.
  찻사발에 차를 달여 갈증을 풀고프니
  어이하면 제일천 우통수를 길어올까.
 

  해마다 물러나고 싶었으나 미루며 꽤 노력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간신들의 모함으로 없는 죄 꾸며 늘그막에 귀양살이할 줄 몰랐으나 벗들만은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고 또한 벗이 그리운 듯하다.

  혼탁한 세상에 병든 눈은 아름다운 봄꽃이 깨끗이 씻어주며, 비가 내려 잠들었던 세상은 다시 깨어나길 바라는 것 같다.

  차를 마시며 갈증을 풀고 싶은데 어이하면 제일 좋은 우통수를 찾을까하는 내용이다. 우통수는 물맛이 좋아 신라 정신태자와 효명태자가 이물로 차를 끓여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는 전설이 있다. 우통수는 오대산 상원사 인근에서 발원하며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샘물이다는 내용이 있다. 허균의 「누실명」이라는 시를 보면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시 일부를 보면,

 

  열자되는 작은 방, 남으로 낸 지게문 둘.
  한낮에 볕이 들어, 밝고도 따사로와라.
  차 반 사발, 향 한 줄기.
  유유하여라, 천지고금에.
  누추하니 어찌 사노, 남들이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신선세계 대궐이라.

  누추하고 작은 집이지만 따사로운 햇볕이 너무 좋다. 차도 한 사발이 아닌 반 사발에 만족하며 거기에 향 한줄기에 유유하니 신선이 사는 대궐과도 같다는 내용이다. 우리네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마음인가? 우리는 늘 이러한 이상세계를 꿈꾸는 사람이 있어 삶에 위안을 삼는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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