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들어 가는 거다
역사를 만들어 가는 거다
  •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 승인 2023.09.0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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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전라도(全羅道)는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호남의 큰 고을이었던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첫 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전주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을’이라면, 나주는 ‘고려 태조 왕건의 고을’이다. 고려 현종은 거란과 전쟁이 한창일 때 행정 조직을 일사불란한 전시체계로 바꿔야 했다.

 곡창지대에서 효율적인 군량 확보를 원했고, 지방호족들이 날뛰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더불어, 전주는 후백제 정서와 견훤 세력이 그때까지 강하게 남아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방행정조직을 정비해서 전쟁 수행과 왕권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다.

 현종은 거란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왕건의 훈요십조 중 제8 훈을 강조한다. ‘금강 이남의 산형 지세는 배역한 형세이니, 인심도 그러할 것이므로 그쪽 사람을 중용하지 말라’고 한 거다. 그것은 과거 후백제 수도였고, 당시 공공연하게 반란 기운이 짙었던 전주 호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현종은 단호하게 조치(措置)했고, 그가 내세웠던 명분이 ‘훈요십조’였다. 한편, 이성계 이후 조선 임금들도 전주에 신경은 쓰되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들의 발상지인데도 직접 들른 임금이 한 명도 없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정치권의 호남배제론과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전라도에는 아름다운 산, 끝없이 펼쳐진 곡창지대, 드넓은 남서해안 갯벌이 있다. 이것들이 주는 풍요로움은 축복인 동시에 침략과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라인은 가혹한 역사의 부침 속에서 강인한 끈기로 이 땅을 지켜냈다. 중앙권력에는 무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거다.

 전라도는 천 년 역사 속에서 늘 변두리였다. 그래도, 묵묵히 지켜보고 가슴 속 깊이 삭이면서 느긋하고 은근하고 아그똥한 기질로 다채로운 예술문화를 꽃피웠다. 슬프지만 오지게 핀 꽃이다. 그래서 전라미술은 예나 지금이나 층이 두텁지 않지만 탁월함을 보였고, 현재도 선명한 개성과 다양함으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올해는 국제교류전과 굵직한 해외 미술관의 한·중·일 기획전시 참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느 때보다 정치적·외교적으로 예민한 시기지만, 예술이 힘을 발휘한 거다. 전주문화재단의 팔복예술공장·한벽문화관에서 열린 <和/Harmony/화전(2023.7.14 ~ 8.13)>은 중국 청두·메이저우, 일본 시즈오카현과 함께 시각적 조화와 화합이 만들어 낸 ‘함께-여기에-있음’을 경험하고, 동아시아 문화도시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국 구이저우미술관(貴州美術館)에서는 <격물개신(格物開新),(2023.6.16 ~ 8.27)> 기획전과 <동방의 전통과 현대미술>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저마다 처지를 인정하면서 각자가 중심이 되는 연대 필요성을. 토론을 넘어 자기만의 특성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구체적 실천’을 공유했다.

 일본 나가노현립미술관(長野縣立美術館)에서 열린 <2023 중·일·한 국제현대미술전(2023.8.11 ~ 22)은 각국 주요 미술가들이 모여 전시를 통해 직접 교류하면서 연대를 강화했다. 자기만의 특성과 가치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실천한 거다. 한편, 나가노시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체류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국제예술특구를 계획하고 있다.

 단군 이래로 이렇다 할 미술시장이 없는 이 땅.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어둠은 짙었지만, 저마다 여명을 꿈꾸며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내달린 예술가들의 혼이 배어있다. 이제는 자신감 있는 넓은 품으로 저항하고 도전하면서 울타리 밖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 발걸음이 역사의 궤적이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거다.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 미술평론가, 지든갤러리,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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