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반가운 소식
참 반가운 소식
  • 송태규 시인·前 원광고등학교 교장
  • 승인 2023.08.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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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규 시인·前 원광고등학교 교장

반갑지 않은 찌는듯한 무더위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결혼하고 수원에 사는 아들 내외가 엊그제 다니러 왔다. 아들이 10여년 군대 생활을 마치고 6월말에 전역하는데 그 신고식을 하는 셈 치고 내려온다고 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과일을 먹다가 선물을 준비했다며 며느리가 복권을 한 장씩 건넸다. 1등 당첨금이 자그마치 10억짜리였다.

무슨 복권인가 의아해하자, 동전을 건네면서 긁어보면 안다고 했다. 혹시나, 행여나 하며 일단 한 줄을 긁었다. 칠이 벗겨지자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이게 무슨 소리야. 이상한 복권도 다 있구먼. 두 번째 줄을 긁으니 이번에는 ‘축하해요’. 아니 뜬금없이 무얼 축하한다는 거지. 애들을 바라보니 어서 마저 긁으라는 눈빛이다. 마지막 줄에는 ‘할아버지가 되셨어요’. 눈치도 못 채고 멀뚱거리는데 아들 내외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희 선물입니다.” 세상에! 며늘 아이가 임신 4개월에 들어섰다며 건네는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선물이었다.

태명도 지어 왔다. 내년 토끼띠 해에 나온다니 ‘끼끼’라고. 심장 박동 소리가 초음파 영상을 통해 힘차게 들렸다. 이 소중한 선물을 어디 10억짜리 복권에 비할까. 곁에 있던 딸내미는 새언니를 껴안고 엉엉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도 아내도 활짝 웃으면서 슬쩍슬쩍 눈자위를 훔쳤다. 내색도 못 하고 기다리던 참 반가운 소식이라 기분이 천장을 찔렀다.

다음날 세종시에서 철인3종 대회가 열렸다. 새벽 4시에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는데 마음가짐이 달랐다. 6월 장마가 고개를 숙이더니 7월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불볕더위다. 도로에 달걀을 깨뜨리면 반숙 정도는 될 고온의 연속이다. “수온 29.2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보온 슈트는 착용을 금지합니다” ‘2023 아시아 트라이애슬론 컵 세종대회’ 안내 문구다.

첫 종목인 수영 1.5km를 참 수월하게 끝냈다. 사이클을 마칠 무렵 해가 중천에 솟았다. 데워진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쉴 새 없이 땀이 흐르며 물에서 건진 생쥐 모습이 되었다. 발걸음이 점점 무겁다. 늘 그렇듯 기진맥진할 때마다 가족을 떠올린다. 이번에는 며느리의 태중에 있는 예비 손주를 생각하며 힘을 얻었다. 거칠어지는 내 호흡 사이로 ‘끼끼’의 심장 박동 소리가 타고 들어왔다. 세상은 참 감사한 일로 가득하다. 건강한 몸으로 숨 쉴 수 있어서, 의지하고 보듬어주는 가족이 있어서, 지칠 때 곁에서 용기를 돋워주는 동료들이 있으니 말이다.

철인 운동에 빠진 지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몸뚱이를 괴롭혔다. 앞으로도 혹독하게 육체를 다그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나같이 의지가 약한 사람은 육신을 달구어야 조금이라도 겸손해지고 남의 입장을 헤아리게 된다.

육신이 편하면 편한 대로 더 해이해지고 누군가에게 기댈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몸을 달구어서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내 힘으로 결승선을 가슴에 품는 그 희열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다. 그러면 내 생활도 조금은 윤기를 더하게 될 테니까. 오늘도 누군가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하려, 겅중겅중 달려가는 나를 꿈꾼다.

송태규 <시인·前 원광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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