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 고은진주 시인
들고 오던 계란 한 한 판
한눈팔다 폭삭 떨어져
알뜰하게 깨져버렸다
참으로 난감한
판,
모진 판에서 깨진 것 골라낼까
이런 판에서나마 깨지지 않은 것 골라볼까
망설이는 동안 등 뒤는
미끈거리고 제멋대로 흘러내린다
흰자와 노른자가 한패로 끈끈해진다
흘낏거리는 눈을 피해
분리되거나 끝까지 흐물거리거나
당황한 한 판에 모조리 집어넣으려는
모의
판 짜는 일에서 불콰하게 판을 키우고
판 돌리는 일까지
변덕스럽고 위험한
판에 박히기로 더없이 완벽한 오후
나는 나의 노른자와 흰자를 분류하다가
한데 모아 섞어보는 것이다
이판저판에서 혹 거듭거듭 깨진 판에서
난처하다고 해도
판가름하기에는 아직 이른 서른,
역전의 한판
도사리고 있다
<해설>
계란 한 판에 우리의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들고 오던 계란 한 한 판/ 한눈팔다 폭삭 떨어져” 시적 자아의 사고가 전개됩니다. 사노라면, 계란 한 판을 폭삭 깨버리는 난감한 일도 생기겠지요. 깨진 계란 판을 앞에 놓고 망연자실하는 상황처럼 우리는 때로 고난과 역경에 부딪혀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모진 판에서 깨진 것 골라낼까/ 이런 판에서나마 깨지지 않은 것 골라볼까” 이는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고뇌로 확장되어 갑니다. “판 짜는 일에서 불콰하게 판을 키우고/ 판 돌리는 일까지/ 변덕스럽고 위험한” 변화무쌍한 “삶의 판”을 두고 고뇌합니다.
“이판저판에서 헉 거듭거듭 깨진 판”은 막막한 절망의 현실이 눈앞에 있습니다. 하지만 “역전의 한판/ 도사리고 있다”라는 말로 유쾌한 반전을 만들면서 결코 삶이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시인은 간접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