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의 2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최영규 전북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 승인 2023.08.17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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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질문 하나를 받았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몇 살 때가 좋겠느냐?”

 누구는 삼십대, 누구는 지금이 좋아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등 함께 자리했던 사람들의 답이 다 제각각이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10대다. 철없이 그저 재미있게 놀고 싶은 이유다. 그러고 보니 동석했던 사람 중 20대로 답한 사람이 없었다. 의외다. 가장 젊고 건강하고 활기찬 시기인데….

 지금 BTS가 있다면 나의 20대 시절엔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다.

 레코드집마다 서태지앨범이 도배되어 있었고 거리마다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컴백홈’ 등 대표적인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던 90년대. 나의 20대 풍경이다.

 아름답지만은 않다. 군대시절인 1994년 아침 출근(등굣)길에 한강다리가 무너지고 이듬해에는 4층짜리 백화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다. ‘사고공화국’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당시 1천여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대형참사였다.

 정치·경제적으로도 혼란의 시기였다. 1994년 김일성 사망과 1997년 IMF금융위기로 국가 전체가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 지역에서도 가슴 아픈 사고가 일어났다. 1993년 부안군 위도에서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침몰한 사고로 당시 292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그 유명한 지존파 사건, 신창원 사건도 90년대인 걸 보니 1990년대에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도 학업, 연애, 결혼, 취업 무엇하나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던 그 20대에 하필… 이게 내가 기억하는 20대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다. 그리고 내 자녀가 그 청년기를 살고 있다. 앞서 ‘하필 나의 20대’라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즘 청년 세대가 더 나아진 것도 없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참사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전염병을 겪으며 청년들은 우울하고 재미가 없다.

 계속되는 경제난과 정치혐오, 사회양극화로 청년들이 겪는 상실감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나의 20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역대학 출신으로 서울 명문대를 나온 친구들만큼 승승가도를 달리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청년금융지원, 청년수당, 청년일자리 등 국가가 나서서 나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지도 않았다. 대신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소식을 함께 접한 친구 길용이가 있었고 삼풍백화점의 붕괴에 함께 분노하던 종원 선배가 있었다. 김일성 사망으로 비상경계령이 떨어진 그때 함께 있었던 전우 욱이가 있었다. 학생 주머니 사정 알고 술값을 늘 적게 받거나 외상해 주시던 단골술집 사장님이 계셨고, 예고 없이 들이닥쳐도 군소리없이 방 한켠 슬쩍 내주던 봉준이가 있었다. 첫 사랑과 취업에 실패해 좌절할 때 함께 울어주던 주현이 등등 이유야 어떻든 간에 늘 내편이 되어주던 이들이 있었다.

 시대가 변해도 청년들의 상실감은 여전하다. 청년이라는 이 불안한 시기, 그들의 안전망과 삶의 테두리로서의 국가 정책과 지역의 제도가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연대와 관계’가 어느 제도 못지않은 해결책일 수 있다.

 나의 20대가 그랬듯, 친구와 선후배, 전우와 술집사장님이 나의 청년정책이고 제도였듯 현재의 내가 이 시대 지역의 청년, 이웃의 후배들에게 정책이길 바란다.

 10대로 돌아가고픈 나이지만 20대를 함께한 그들이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혹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몇 살 때로 가고 싶으세요?”

 최영규<전북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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