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의료대란과 필수 의료 붕괴의 서막
소아청소년과 의료대란과 필수 의료 붕괴의 서막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3.08.0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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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지난 5월 7일 40도의 고열을 보인 5살 아이가 야간에 서울에서 소아 응급진료를 받지 못해 아홉 군데의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떠돌다가 겨우 진료만 받고 입원실이 없어 귀가 후 다음 날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도서·산간 오지도 아닌 국내 최고의 의료인프라가 갖추진 서울에서 불과 두 달 전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얼마 전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아과)개원의협회는 폐과를 선언하며 혁신적인 제도 개선이 없는 경우 병·의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고 호소하였다. 실제로 많은 소아과 전문의들이 소아 진료를 포기하고 피부·미용이나 노인 요양병원 봉직의로 전업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소아 입원진료나 응급진료를 포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 대한민국은 소아 진료 인프라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소아과는 2023년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레지던트) 정원(207명)에 한참 못 미치는 모집률(15.9%, 33명 지원)을 보여 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불과 5년 전인 2018년엔 정원 넘게 충원됐고, 2019년엔 충원율이 90%에 달했다. 그런데 올해는 서울아산병원(10명)과 서울대병원(10명)을 제외하면 세브란스병원(11명 정원에 0명)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 수련병원에 단 1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당직을 설 전공의를 채우지 못하다 보니 교수만으로 야간당직과 입원환자를 볼 수가 없어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은 한때 입원진료를 중단했고 몇몇 대학병원의 응급실도 야간 소아 응급진료를 포기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결국 앞서 이야기한 5살짜리 한 아이가 허무하게 사망하게 된 것이다. 당장 아이가 아파도 갈 병원이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의사가 부족하니 18년째 3,000명 수준인 전국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진 배경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아과 전문의와 의사들은 ‘소아과 의사 부족’이나 ‘의사 부족’은 착시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의사 전체가 아니라 소아과 전문의 수로만 좁혀 과연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인 원인인지 살펴보자.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각종 통계를 보면 소아과 의사 역시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넘친다. 저출산 여파로 출생인구가 10년 만에 거의 반 토막 났지만 같은 기간(2012~2022년 6월) 소아과 전문의는 거꾸로 28%나 늘었다. 그런데 전국 소아과 의원은 거꾸로 61개(2017~2022)가 줄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현황에 일부 답이 있다. 어렵게 전문의 자격을 따고도 전문과목 표시 없이 일반의로 개원하는 숫자를 말하는 것인데, 소아과 비중이 최근 크게 늘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의 ‘2020 전국의사 조사’를 봐도 소아과는 전문의 취득 후 진료과목이 불일치하는 비율이 타 과보다 7.8%로 높았다. 유독 소아과의 은퇴가 빠른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65세 이상 전체 전문의 46.2%가 활동을 안 하는데, 특히 소청과는 절반 이상(51.1%)이 일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현직 의사는 소아과를 포기하고 미래 의사는 소아과를 외면한다”라고 입 모아 이야기하는 소아과 의사들 주장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결국 의사 정원을 늘려도 소아과 의사는 늘지 않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일단 소아과 전문의들은 소아과 영역의 낮은 수가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소아과 특성상 많은 검사를 할 수 없고 오로지 문진과 진찰 등에 의존해야 하는데 현행 수가가 의사의 이런 고난도 무형의 기술보다는 눈에 보이는 고가의 검사 등에 더 많은 가중치를 주다 보니 소아과 영역의 수가는 매년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런 문제는 오래전부터 누적됐으나 결정적 충격을 준 것은 코로나였다. 국가건강보험 통계를 보면 소아청소년과의 진료비는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반토막이 났다. 실제로 소청과 의원의 요양급여비용(진료비)은 2019년 8,005억 원에서 2020년 4,648억으로 급감했다. 필수 의료분야의 이런 낮은 수가는 비단 소아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장 빈도가 높고 가장 중요한 의료분야, 즉 필수 의료는 높은 수가를 책정하면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으므로 건강보험 설계 당시부터 원가의 60% 수준의 매우 낮은 수가로 시작했고 해마다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필수 의료분야는 질보다는 양이라는 방법으로 생존해 왔고 3시간대기 3분 진료라는 고질적인 한국 의료의 질을 낮추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의학교육도 왜곡시켜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 같은 건강보험 재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비필수 의료로 의사 인력이 모여들고 기존의 전문의들도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이쪽으로 전업하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급격한 저출산과 코로나라는 직격탄을 맞은 소아과에서 먼저 붕괴가 시작되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산부인과, 일반외과, 응급의학과 등으로 의료대란이 번져나가 필수 의료 붕괴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부터 의사를 늘려도 2038년이 지나야 효과를 확인할 수 있지만 수가 등 제도의 개선은 현장을 떠난 소아과 의사를 당장 소아 진료에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점을 정책당국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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