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도착했습니다, 폭우와 폭염 사잇길로
나이가 도착했습니다, 폭우와 폭염 사잇길로
  •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 승인 2023.08.0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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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어울려야 아름답다. 서로 어울려서 소통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지구촌 청소년들의 축제인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막을 열었다. 전 세계 158개국에서 4만 3천여 명의 청소년들이 새만금에 모인다. 싱싱한 햇과일 같은 이들이 기거할 2만여 개 텐트는 야생화처럼 화려하게 대회장을 꽃피우고 있다.

숲도 그렇다. 살아 있는 나무와 오래된 나무가 서로 상생할 때 숲은 아름답게 성장한다. 폭우에 쓰러진 나무의 부러진 잔가지에 손바닥만 한 햇볕 한 조각을 내어준 키 큰 신갈나무의 배려가 사랑스럽다. 종탑이 있는 교회의 창문에서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빛과 같았다.

정읍 솔티숲길을 오르니 층층나무와 감나무가 에워싼 숲의 그늘에서 초빈(草殯)의 이엉을 만났다. 숲의 바람은 이엉의 둘레를 돌아 등줄기로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 지나갔다. 사람의 오래된 주검과 나무의 주검이 숲에 어울려서 시간을 공존하고 있는 숲에 나이가 도착했다.

숲의 생과 사는 치열하게 투쟁한다. 햇볕과 바람으로 생사가 넘나들고 나무의 키가 위로 오르다가 옆으로 쓰러진다. 나무의 치열한 삶과 죽음을 통해서 사람의 삶에 대한 투쟁성과 상호 관계성을 생각해 본다.

정읍 솔티숲 초빈을 지나자 폭우에 쓰러진 소나무는 자빠져 누워 있고 팽나무는 가지가 부러져 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서 산은 초록이다. 내장산은 밤새도록 소쩍새가 울어야 소쩍새 울음이 계곡물에 핏빛으로 흐른다. 단풍나무는 그리운 사람 가슴에 저리도록 계곡물 마시고 슬피 울었을 것이다. 붉게 타오르는 마음의 상처는 붉은 단풍으로 점점 물들어 가리라.

나무는 저항할 힘을 잃게 되면 죽음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생명을 잃은 나무는 숲에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자기 몸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거친다. 장수하늘소가 보이기도 하고 꽃버섯의 자태며 딱따구리의 둥지는 찾지 못했지만, 숲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다툼이 숲길을 오르는 동안 생각은 저장하기에 바빴다.

더 이상 빛을 낼 수 없는 별의 시체는 우주를 떠돌다가 이엉으로 덮인 지붕으로 내려오지 않을까. 층층나무는 이엉 속 주검을 동물로부터 지켰을 것이고, 주검은 층층나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숲을 지켰다.

갑자기 수리부엉이가 숲속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 둥지를 짓는 소리일까. 으스스한 바람이 나무와 사람 곁을 지나 초분을 지키고 있을 층층나무를 맴돌고 간다. 폭우와 폭염 사잇길로 붉은 행성의 존재를 찍어두면 푸른 별로 탄생할 것이다.

오래된 나무가 없는 젊은 숲, 새만금환경생태단지의 한낮 햇볕은 살인 더위였다. 축구장 110개 넓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마치 축구공이 굴러가듯 햇살과 바람을 돌돌 말아 나무와 사람의 목덜미를 스친다.

새만금의 토양을 고려한 탓인지 소금기가 밴 환경에 견디어 내는 식물이 악착같이 살아야겠다는 초록이 말을 건넨다. 해당화의 꽃분홍 꽃도 생명에 대한 각오가 단단해 보였다, 환경에 시달린 초록에서 중국단풍나무와 곰솔의 생기가 새만금 파도 소리에 힘을 잃은 것 같았다. 새만금 환경에서 나무는 저마다 삶의 방법을 터득하느라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삯과 고라니 너구리 꼬마물떼새 수리부엉이도 새만금 파도와 바람 그리고 구름의 발걸음 소리와 밤하늘 별빛과 공생하는 아름다움을 기대해 본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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