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일어나는 착각
살아가며 일어나는 착각
  • 서정환 수필가
  • 승인 2023.07.31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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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우리는 수많은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자신만큼은 질병이나 사고 없이 무병장수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서울을 왕래하고 있습니다. 자주 다니다 보니 표를 예약하지 못하고 승차를 할 때가 있지요. 입석도 없어 예약하지 못한 사람이 배짱 좋게 무조건 차를 타고 봅니다. 노인이니 누가 양보해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착각은 용기를 불러올 때가 있습니다. 디지털시대에 접어들어 종이산업은 이미 사양산업이 되었습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니 잘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주간 문학인신문을 발행한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끈기가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실패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이, 착각을 일으킨 것이지요.

아무튼 다른 사람에게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행운이 자신에게만큼은 찾아올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어느 정도의 착각은 하고 살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이런 마음이 지나쳐 자신을 보편적 규칙에서 벗어난 예외적 존재로 여길 때가 문제입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이러한 착각을 더욱 잘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을 무척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로 여깁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거나 어떤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난폭하게 오토바이를 운전해도, 적절한 준비 없이 위험한 운동을 즐겨도 괜찮을 것이라 여깁니다. 인체에 해로운 본드나 약물을 흡입해도 별일 없을 것이라고,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해도, 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불행이나 끔찍한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사실이 아닙니다. 명백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오류입니다. 이는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십대들의 사망률 1위의 원인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대 사망률 1위를 자살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교통사고로 죽은 십대들의 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 발달심리학자 엘킨드는 이렇게 청소년들이 자신의 존재를 매우 예외적으로 여기는 태도를 ‘개인적 우화’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런 청소년기의 자기중심성은 성장함에 따라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해감에 따라 자신을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보편적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청소년기에 자기중심성이 강했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예외적 존재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행이 닥치더라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하필 내게?’ ‘말도 안 돼! 내게 이런 일이?’라는 부정과 원망의 틀에 갇힙니다. 그리고 고통 이상의 고통과 불행 이상의 불행에 파묻힙니다. 고통과 불행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한탄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정작 중요한 문제해결에 힘을 집중시키지 못합니다.

건강한 성인도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닥치는 불행한 사건에 대해 무력한 심정, 억울하고 비통한 감정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점점 ‘왜 하필 내게?’라는 마음을 ‘나라고 예외는 아니구나.’라는 마음으로 바꾸어갑니다.

고통과 불행은 자신이 원치 않아도 찾아올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결국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임으로써 고통과 불행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데 온전히 힘을 기울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예외라는 착각을 하고는 행복을 찾지 못합니다. 행복은 원해야 찾아오지만, 불행은 원치 않아도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고통의 불가피성과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삶의 불행에 대한 정신적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불행 앞에서도 무너져 내리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착각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나아갑시다.

서정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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